에세이 만남

싸가지가 있는 세상을 그리며

南塘 2021. 4. 7. 09:14

글 : 공학박사 이동한

 

“싸가지”의 사전적 의미는 버릇이 없거나 예의범절을 차리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는 어린잎이나 줄기를 가리키는 ‘싹’에 ‘-아지’가 붙은 말이다. 지난 해 말 가황 “나훈아 선생”의 “어게인 코리아” 언택트(Untact) 공연이었다. 시청률이 무려 29%이다. 주목 받은 노래가 있다. “테스형”이다. 가사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사랑은 또 왜 이래” 세상을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싹수없는 세상이다. 참으로 “양통머리“가 없는 비양심이 양심으로 포장되어 세상을 활보한다. 필자가 들어 온 ”싸가지 없는 놈, 싸가지 없는 가시나“ 등은 애정이 있고 잘되기를 비는 마음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그러나 최근에 ”싸가지“는 다른 의미이다. 절망의 마음을 담은 비난의 말이다.

세상이 너무 힘들어선지 요즘 들어 부쩍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싸가지가 있는’ 일이 많으면 좋으련만, 거꾸로 ‘싸가지 없는’ 일이 자꾸만 생긴다. 국가와 사회에서 발생하는 부정직한 일들이 지속해서 발생하면서 생긴 이상 현상이다. 모든 생활의 근본이 되는 것이 정치이다. 그런데 정치에서 거짓말이 넘쳐난다. 거짓을 이야기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창피하거나 가슴이 두근거림이 없다. 위에 물이 맑은데 아랫물이 오염이 되었다고 한다. 지나고 보니 적폐인 사람이 적폐가 아닌 사람을 적폐로 몰아서 감옥(監獄)에 넣었다.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하고, 부도덕한 행위를 많이 해서 불감증을 갔게 되었다. 필자도 헷갈린다. 무엇이 정직이고 공정이고 정의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가장 공정하고 정의로웠던 인사가 있었다. 젊은이들의 우상과 같았다. 바로 “조국(曺國) 서울대학교 법학과 전 교수이다” 문제가 있으면 사과하면 될 일을 “관행”으로 치부했다. 25회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집권 4년이 지난 정부가 전(前) 정부 탓한다. 부인 탓 한다. 부동산 사장 탓을 한다. 그리고 국민을 적으로 대한다. 집을 보유한 사람들을 적폐로 몰고 세금이 아닌 징벌적 벌금을 부과한다. 이제는 정치권을 떠나 스포츠 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폭력을 자행 선수가 피해자를 상대로 법적소송을 하겠다고 한다. 참으로 한심자체이다. 서민교수는 우리사회 전반에 “문재이니즘”이 판을 치고 있다. 이제 마음을 담은 진정한 사과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결과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싸가지 없는 나라”이다. 이제 그들에게 “싸가지”를 빗되어 사과를 바라지 않는다. 사과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사과는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과를 받는 사람에게 진심이 전달되어야 하는 것이다. 애초에 진심 그런 것은 없었다. 그러니 LH에서는 과거 5년 전 정책과 업무 실수에 대한 손해배상을 우려해서 전 직원에게 세금으로 보험을 들어 준다고 한다. 이런 쓰레기들을 어찌 믿을 수 있는가?

돌아가야 한다. 희망이 있는 나라, 미래가 있는 나라, 상식과 있는 나라,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한 나라가 되어야 “싸가지 있는 나라”가 된다. 편협(偏狹)된 가치관으로 무장된 귀족 정치인, 귀족 노조, 귀족 사회 활동가, 귀족 법관, 귀족 언론은 진퇴를 결정해야 한다. 더 이상 나라를 좀먹는 기생충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오픈 마인드가 부족한 사람과 집단은 마음에 문을 열고 정직하고 윤리를 기반으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롭게 해야 한다. 더 이상 지연되면 코로나 방폐를 뚫고 광화문으로 종로로 서울 시청 앞 광장으로 가야한다. “싸가지 있는 나라”를 위해서 나서야 한다.

 

2021. 4.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