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만남

단파 빵

南塘 2021. 3. 9. 06:18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이다. 양력으로 3월5일, 음력으로 1월22일이다. 아내의 58회 생일 날이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날이 두 날이 있다. 태어난 날과 태어난 이유를 깨닫는 날이다.(마크 트웨인) 그런데 부모는 새 생명을 세상에 내어 놓는다. 그리고 그 아이가 태어난 이유를 깨닫게 되는 날까지는 꼬박 30년 정도가 소요된다.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태어난 이유는 단 한가지다. 부모의 사랑의 결과이다. 그 사랑을 깨닫는데 그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도 깨닫지 못하는 자식들이 많다. 자식 앞에 부모는 언제나 아프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자식을 품에서 내려놓지는 못한다. 어떻게 낳았고 어떻게 키웠는데 내려놓을 수 있을까? 성년이 되어 부모의 품을 떠나 각자의 인생을 살게 되더라도 자식은 부모의 가슴에 기쁘고, 행복하고, 아프고, 슬프고, 안타까운 아이일 뿐이다. 그런 것이다.
 
  필자에게는 1녀1남의 자식이 있다. 그리고 가슴에 묻은 딸아이가 있다. 가슴에 묻은 딸아이는 1987년생이다. 아내가 그 아이를 가졌을 때 수원시 화서동 동막골 달동네에 살았다. 도시의 끝이다. 경부선 기차선로가 옆을 지나는 마을이다. 기차 길 넘어는 수원팔경의 하나인 서호가 있다. 동막골 부자로 알려진 서울 댁 집이 있었다. 그 집에 첫 전세를 살았다. 방 두개 작은 부엌에 옥상으로 오르는 계단아래 설치된 욕실과 화장실이 있는 셋방에서 뇌졸중(중풍)을 앓고 계신 어머님을 모시고 살았다. 어머니께서는 “단파 빵”을 무척이나 좋아 하셨다. 필자도 좋아하는 편이다. 없는 살림에도 아내는 어머니께서 좋아 하시는 단파 빵을 챙겨서 드렸다. 35년 전 어머니는 쉰다섯을 넘긴 연세로 요즘 같으면 젊은 층에 속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음식에 유난히도 욕심이 많았던 것 같다. 1987년 봄이었다. 출근하는 필자를 붙잡고 아내는 “단파 빵”이 먹고 싶으니 퇴근할 때 한 개만 사다달라는 것이다. 어머니께서 드시는 것을 나누어 달라고 차말 말을 못하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눈치 없는 어머니시다. 한편으로는 짠한 마음이 가득했다. 부탁을 받고 출근을 했다. 생산라인에서 노동을 하던 필자는 잔업 4시간을 마치고 밤 9시를 넘긴 시간에 퇴근을 하면서 아침에 아내의 부탁이 생각이 났다. 문제는 주머니에 단돈 100원도 없었다. 당시에는 생활비가 부족해서 매달 카드로 생활비를 돌려막기를 하던 때이었다. 고민은 되었지만 월급 때까지는 어찌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당일 화서시장을 지나면서 보니 빵집 문은 열려 있는데 들어가 구입할 돈이 없고 들어갈 용기도 없었다, 가까운 곳에 처갓집이 있었지만 들려서 차마 장모님께 돈 천원을 빌려 달라고 부탁도 하지 못했다. 어두운 밤 구불구불 골목길을 지나 집에 도착했다. 아내 얼굴을 보고서 어떤 말도하지 못했다. 미안함과 무능함에 좌절감이 뼈아픈 상처를 남기고 세월은 간다. 결혼하면서 절대 불행하게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현실은 첫째 아이를 가진 아내에게 “단파 빵” 한 개도 사줄 수 없는 남편의 무능함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아내도 그런 필자의 마음을 아는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결혼 초 눈물 많이 흘린 아내의 동막골 생활이 지금도 가끔은 저린 가슴 아픈 한(限)의 기억으로 소환된다. 이후 세월이 흘렸다. 열심히 일하고 근검절약하면서 생활해 온 덕분에 결혼 7년 만에 빚 없이 수원시 권선2지구 삼성아파트 22평 분양받고 입주하게 되었다. 아주 짧은 시간 작은 행복이 찾아왔다. 그리고 윤년이었던 음력 11월30일에 첫째는 갈길 바쁘다면 엄마와 아빠를 두고 천국으로 갔다. 이후 1996년 첫째 딸과 똑 같은 아들을 삼신할머니에게 받았다. 기쁘고 감사했다. 그리고 퇴근길에 가끔 이름 있는 제과점에 들려 곤보 빵(soboru)과 단파 빵을 구매하여 가족들에게 가져다준다. 그때면 어김없이 아내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첫째 임시 때의 먹고 싶었던 “단파 빵” 이야기를 꺼내든다. 그 “단파 빵” 이야기는 이순을 넘기 지금도 단골메뉴이다. 이제는 그만할 때도 되었는데 말이다. 사람이 살면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서 고생을 하더라고 행복을 누리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한다. 사람은 서로의 공통점 때문에 친하게 되고 차이점 때문에 성장하는 것이다. 아내와 필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또 차이점도 많다. 그것을 조정하여 생활을 만드는 시너지(synergy)를 통해서 가장 효율적이며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뿐만 아니라 세상에 기혼 남성들 모두는 아내가 아이를 자졌을 때 요구하는 음식에 관한 3정을 이행 했는지 의문이다. 3정이라 정품, 정위치, 정상(제때)공급으로 정의한다. 필자의 아들은 배필을 만나 아내의 요구하는 것을 잘 수행해 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성공하는 결혼생활 그리고 황혼의 행복을 가지고 싶은 지인들에게 감히 말하는 것은 “아내의 사소한 실수를 나무라지 말라, 아무렴 댁과 결혼한 아내의 실수에 비하겠나?” 필자도 외유내강인 형(形)이라 수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살았다. "늙어서 보자 그 말도 이제 옛말"(詩庭 박태훈의 해학이 있는 아침 중에서)이다. 되새겨 볼일이다. 2010년 이후 불어 닥친 페미니즘으로 남자의 전성시대는 가고 선영의 전성시대가 됐었다. 이순이 되면 남편들이 힘이 빠지는 절대이유는 현직에서 은퇴이다. 명예퇴직이든 정년퇴직이든 경제학의 현금흐름이 중단되면 아내들의 힘은 더 커지는 것이다. 지금도 후회한다. “단파 빵” 하나, 100원이면 구매할 수 있었던 “단파 빵”, 그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매하여 아내에게 받쳐 써야 한다. 필자의 딸과 아들을 낳은 이유를 알아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단파 빵”이다. 딸과 아들의 나이 평균이 서른을 넘겼으니 말이다.
 
2021. 3. 8 
 
참고) 1)페미니즘은 ‘여성의 특징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는 뜻의 라틴어 ‘페미나(femina)’에서 유래한 말로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던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며,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의 권리와 주체성을 확장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이론 및 운동을 가리킨다. 즉,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차별적인 대우를 받아온 여성들이 사회가 정해놓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등 ‘성(sex, gender, Sexuality)에서 기인하는 차별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한다. 2) 선영(仙泳)은 필자의 아내 이름이다. 성은 동례 정(鄭)씨이며 이름은 선영(仙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