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거주할 수 있는 그린카드를 수령한지 3년(2018년4월5일)이 되어 간다. 2017년 11월30일 매서운 겨울 추위가 있던 날 아침 9시30분 광화문 미국대사관에서 이민과 관련된 인터뷰를 했다. 영사는 미국 스폰서에 관하여 많은 질문을 했다. 듣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 말하는 것이 서툴러 인터뷰 내용이 미흡하여 서류보완을 요청 받았다. 서류 보완 후 3주가 지나서 이민국 심사 통과를 통보 받고 여권에 입국을 위한 비자발급을 받았다. 한국 설 명절을 보내고 2018년 1월19일 미국에 입국했다. 영주권은 공항입국 때 입국목적이 이민이면 그린카드 프로세스가 시작된다. 입국 후에는 소셜카드(사회 보장 번호와 사회 보장 카드)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운전면허증을 받기 위해서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주(州) 마다 한국 운전면허증을 인정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각각의 법령이 있다. 캘리포니아는 한국운전면허증 또는 국재면허증을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생활하기 위한 법적신분이 성립되는 것은 첫째 시민권 또는 영주권이다. 취업비자, 학생비자도 해당된다. 둘째는 미국사회보장제도 법령에 의한 소셜카드이다. 그리고 가장 많이 통용되는 증명서(ID)는 운전면허증이다. 이 세 개의 카드가 있어야 법적으로 안정이 된다. 한국과는 차이가 있다. 한국은 관공서를 비롯한 모든 서비스를 이용할 때 주민등록증이 우선한다. 다음이 운전면허증이다. 미국은 운전면허증이 없으면 상당히 불편하다.
멋모르고 시작한 이민생활 중 1/2는 한국에서 생활을 했다. 정확하게 이야기해서 이민의 쓴맛을 보지는 못했다. 확실한 것은 철저한 자본주의 국가이다. 자유의 나라라고 명명하지만 자본 즉 “돈”이 없으면 인권도 자유도 계급도 없는 사회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계약에 의하여 진행된다. 그래서 어떤 계약서든 철저하게 읽어보고 사인해야 한다. 미심적은 글이나 이해하지 못하는 문장은 반드시 확인한 연후에 사인을 해야 한다. 수시로 들어오는 메일도 같다. 메일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확인(confirm)하면 절대 안 될 일이다. 그리고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문화의 차이다. 문화는 “정치, 경제, 사회”와 같이 큰 그림이 아닌 사회생활에 반영되어 있는 관습의 차이가 있다. 미국애서의 일상생활을 한국과 동일하게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시간이 해결해 준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 교훈이 된다. 미국인들은 빨리 빨리는 없다. 관공서에서 일을 보게 되면 속이 터진다. 짜증이 난다고 불만을 이야기 한들 돌아오는 말은 기다려라(Wait) 단 한마디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 졌다. 미국인들이 스피드하게 처리하는 것 하나 있다. 돈이 되는 서비스는 한국에 비교하여 정말 빠르다. 반면 반대의 경우는 하 세월이다. 저들이 만들어 놓은 규정과 프로세스를 들먹이며 시간이 경과해야 일처리가 끝난다.
우리는 착각 가운데 살고 있다. 첫째는 자신이 의도하는 것이 정답이거나 정답이 될 수 있다는 정의감이다. 둘째는 자신의 생각을 대부분의 타인이 이해할 것이고 친절하게 대응해 줄 것이라는 것이다. 그에 대한 답은 틀림이다. 흔히 우리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의 명함을 내민다. 그러나 그게 무순 소용이 있겠는가? 반면에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마음을 주고 정을 주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사람은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다. 나를 존경하는지, 나를 사랑하는지, 나를 좋아 하는지, 나를 이해하는지 등등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나를 싫어하는지 이다. 동물들도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을 쉽게 판단한다. 동물들은 사람과 달라 한번 아니 놈은 절대 아님이 된다. 사람도 이해의 골이 깊게 되면 동물들과 행동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정치적 동물이다. 즉 사회적 동물이라는 개념이다. 인간이 개인으로 존재하고 있어도 그 개인이 유일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타인과 관계를 가진다.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이다. 개인은 사회에서 그 존재가 확실해 진다. 거기에는 관계성 확대를 위한 상대성 원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필자는 2019년1월 초(初)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겠다. 존경하는 지인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겠다. 배려하면, 나눔을 실천하며, 겸손하게 세상을 보고 행복하게 살겠다. 평생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했던 사람들도 사랑하고 아끼면서 행복하게 살겠다. 올해부터 마음은 행복하게 살아 보겠다.” 결심을 했었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어울려 사는 것이다. 뜻이 있어 이순나이에 미국이민을 살고 있지만 잃고 싶지 않은 것은 살아 온 세월 가운데 맺어 온 사회관계성이다. 친구, 선배, 후배, 스승과 지인들이다. 앞으로 30년을 함께 살아야할 인생 동반자들이다. 세삼 중요한 것은 현역에 있을 때 이런 저런 핑계로 소홀히 했던 지인들이 필자의 “카카오스로리 또는 블로그” 엮는 필자의 보잘 것 없는 산문(散文)과 시(詩)에 남겨주는 응원의 댓글이나 사랑의 느낌표이다. 인간은 관심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오늘도 이민 생활에 격려와 박수를 보내 주는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감사드린다. 고마움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20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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