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빌 게이츠가 스티브 잡스에 대해 열등감을 느낀다? 바로 청중을 사로잡는 스티브 잡스의 매력적인 프레젠테이션 능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스티브 잡스가 펼치는 프레젠테이션에는 어떤 매력이 담겨 있는 것일까? 그는 어떻게 그처럼 매력적인 프레젠테이션 능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스티브 잡스 프레젠테이션의 7가지 기술을 소개한다.
“앞으로 기사 계획을 낼 때 애플 관련 기사는 그만 내도록! 지면이 모두 애플 기사로 채워져서야 되겠나?” 때는 애플이 멀티 터치 스크린을 내세운 스마트폰 ‘아이폰'을 막 출시한 시점이었다. 외신들은 애플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했다. ‘스마트폰' 출시일이 6월 29일로 확정됐다는 이야기를 무슨 특종처럼 보도했다. 아이폰 구매를 위해 대기하는 소비자들의 진풍경에서부터 아이폰을 독점 공급하는 AT&T와 애플의 비밀계약에 이르기까지 기사는 끝도 없이 쏟아졌다. 국제부 기자들도 미국, 대만, 국내 소스를 종합하여 아이폰을 분석하기에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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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현상은 스티브 잡스가 ‘맥월드(Mac World: 애플사의 신제품 발표회)', ‘WWDC(World Wide Developer Conference: 전 세계 개발자 컨퍼런스)' 등에서 기조연설을 할 때마다 반복됐다. 아이팟, 아이팟 미니, 아이팟 터치, 3G 아이폰 등 애플이 신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스티브 잡스는 어김없이 기조연설에 나섰고, 그 유명한 프레젠테이션은 전 세계 애플 마니아와 기자들을 ‘매료'시켰다.
청중을 사로잡는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에는 어떤 힘이 있는 것일까. 수많은 사람들의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기사'로 매일 독자와 만나고 ‘기삿거리'를 찾아 헤매는 ‘순수한' 기자 입장에서 스티브 잡스의 설득력을 찬찬히 뜯어 보는 일은 애플이 신제품을 공개할 때만큼이나 ‘살짝' 흥분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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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뭐야?” 언론계에 입사한 초년병들이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아닐까 싶다. 의욕으로 넘치는 신입 기자들은 취재한 모든 것을 기사에 담아 내려는 욕심을 부린다. 그러나 하나의 주제와 핵심 내용을 살리지 못한 기사는 바로 쓰레기통에 처박힌다. 핵심이 없으면 기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사람들도 의욕이 앞서다 보면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담으려 하거나, 제품의 모든 특징을 두서도 없이 청중들한테 전달하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에서 ‘장황함'이란 있을 수 없다. 주제가 생생히 살아 있다. ‘오늘 우리는 휴대폰을 재창조합니다(2007년 아이폰 출시 당시)', ‘세상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입니다(2008년 맥 에어 출시 당시)'.
간결하고 분명한 주제에 이어지는 자세한 설명,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주제는 더욱 환히 빛난다. 청중은 곧바로 ‘맥 에어에 SSD 메모리를 썼구나, 역시 세상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이야!'라는 이해와 함께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제품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는 스티브 잡스처럼 청중과 소비자가 교감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주제를 찾아야 한다. 그 때문일까.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은 주제와 핵심을 늘 찾도록 훈련된 기자들의 입맛에 꼭 맞는다. 이것이 그의 프레젠테이션이 널리 그리고 신속하게 기사화되는 이유다.

흔히 애플 제품의 디자인 미학을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라고 한다. 아이팟 디자인이 복잡하다며 몇 번이나 퇴짜를 놓았던 스티브 잡스의 고집불통은 얼마나 유명한가.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은 그의 디자인 철학과 맥이 닿아 있다. 벽면 전체를 활용하는 슬라이드 한 장에는 한 단어, 한 문장 혹은 한 가지 숫자나 이미지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미니멀리즘 프레젠테이션은 청중들로부터 고도의 집중력을 이끌어 낸다. 간결한 슬라이드 한 장이 구구절절한 몇 장보다 더 좌중을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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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뿐만 아니다. 그의 말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 동영상을 구해서 직접 보라. 쉽다. 쏙쏙 들어온다. 내 영어 실력이 부쩍 늘었다고 착각할 지도 모른다.
빌 게이츠 회장의 연설과 스티브 잡스의 연설에 쓰인 단어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게이츠의 경우 ‘디지털', ‘장치', ‘굉장한', ‘전화기', ‘윈도우' 등의 단어를 많이 사용했으며, 잡스는 ‘굉장한', ‘아이팟', ‘아이폰', ‘맥', ‘맥북' 등이었다. 두 사람 모두 자사 제품을 ‘굉장하다'고 자부하고 있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빌 게이츠의 말 5.2%가 3음절 이상의 ‘난해어'로 분류된 반면, 스티브 잡스가 쓴 난해어 비중은 3%에 지나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 프레젠테이션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은 청중의 영어 실력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기술은 날이 갈수록 복잡해진다. 이를 쉽게 설명하는 데는 정말 많은 노력이 든다.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한 단어, 한 문장,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하는 일은 작가가 겪는다는 ‘시작(詩作)의 고통'과 같을 것이다.
우리 영역에서 쓰는 전문용어부터 추방해 보자. 내 프레젠테이션의 거닝-포그 지수(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교육 연수를 나타내는 지수)가 낮아져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 프레젠테이션에서 집중의 힘이 ‘선명한 주제'에서 나온다면, 설득의 힘은 소비자들이 누리는 효능을 제대로 설명하는 데 있다.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이 소비자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설명해야 한다.
노트북 ‘맥 에어'를 소개할 때 얇은 봉투에서 꺼내는 모습을 연출한다든지, 30기가바이트(GB) 아이팟을 선보일 때 7,500개 곡과 2만 5,000개 사진, 75시간의 비디오를 저장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 그 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이 ‘품위 있는' 설득의 힘을 가지는 것은 단순히 효능을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술 변천사'라는 역사적인 배경을 무기로 동원, 아주 쉽게 설명함으로써 설득력을 더한다.
스티브 잡스는 2005년 WWDC 기조연설에서 애플은 맥PC 핵심 칩을 IBM의 ‘파워PC'에서 ‘인텔 프로세서'로 바꾼다는 중대한 발표를 했다. 스티브 잡스는 인텔 칩 기술 자체에 대해서는 아예 설명하지 않았다. 인텔 칩이 빠르고 전력을 적게 소비하기 때문이라는 효능만을 설명한 것도 아니다.
그는 슬라이드 전체에 ‘변환(Transition)'이라는 주제어를 크게 띄웠다. “애플 맥 역사에는 두 번의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10여 년 전 맥PC는 68K(모토로라)에서 파워PC(IBM)로 전환했습니다. 또 2년 전에는 운용체계(OS)을 OS9에서 OS10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제 애플 역사상 세 번째 변화를 맞이합니다. 그렇습니다. 파워PC에서 인텔 프로세서로 전환합니다.” 이처럼 역사를 동원한 스티브 잡스의 설명 기법은 그의 프레젠테이션 곳곳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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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는 대조법을 즐겨 쓴다. ‘가장 작은 크기에 상상할 수 없는 기능을 담고 있다'는 식이다. 제품의 특징을 대조법만큼 극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이 또 있을까. 2005년 스티브 잡스의 ‘아이팟 나노' 공개 연설을 살펴보자.
“1,000 songs in your pocket. Impossibly small. (당신의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1,000곡. 불가능하리만큼 작다.)” 엄청난 용량과 믿을 수 없는 작은 크기를 비교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전매특허인 대조법은 다음 문구에서도 확인된다. “smallest in the market, but big features. (시장에서 가장 작다. 그러나 엄청난 기능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대조법은 아이팟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아이팟 나노는 음악 이상의 기능들을 제공합니다. 사진, 시계, 게임, 캘린더, 스톱와치……. 14시간 배터리 수명 등…….”
아이팟 나노가 얼마나 작은가를 그의 설명과 비주얼 슬라이드를 통해 확인한 청중들은 아이팟 나노의 부가 기능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다. 스티브 잡스의 연설은 그렇게 절정(Climax)으로 치닫는다. 청중은 프레젠테이션을 본 것이 아니라 한편의 ‘극(Show)'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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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한 프레젠테이션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 의외로 그의 연설에는 과장된 어휘가 남발되고 있다. ‘Extraordinary(비범한)' ‘Amazing(놀라운)' ‘Cool(멋진)' ‘Remarkable(주목할 만한)' ‘Incredible(믿을 수 없는)' ‘Revolutionary(혁명적인)'와 같은 단어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미국 잡지 <비즈니스위크>의 카민 갤로(Carmine Gallo)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의 특징을 설명할 때 “It works pretty doggone well.”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Doggone'은 속어로 ‘저주할', ‘빌어먹을', ‘제기랄'의 뜻이다. 그는 가끔씩 “ ‘죽여주게' 잘 작동합니다.”라는 표현도 쓴다.
그러나 이러한 단어들이 과장된 표현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스티브 잡스에게는 제법 잘 어울리는 ‘개성적인 표현'으로 보인다. 오히려 청중들은 스티브 잡스의 과장된 단어를 들을 때마다 그로부터 기(氣)를 받는다.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기 때문에 과장된 단어라도 지나쳐 보이지 않는다.
청중들은 신제품에 감동하고 그 제품을 설명하는 스티브 잡스의 열정에 또 한 번 경의를 표한다. ‘잡스야말로 이 제품을 정말 자랑스러워 하며 좋아하는구나' ‘나에게도 저런 열정이 있었던가' 이러한 기운(Passion)은 단순한 기술(Skill)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때 자료는 물론 내 마음도 점검해 보자. 얼마나 열정을 품고 있는지 말이다. 열정이 없는 프레젠테이션으로는 ‘정보'는 제공할 수 있어도 ‘감동'까지 줄 수는 없다.
 스티브 잡스의 설명은 단순한 정보 전달의 의미를 넘어선다. 기술 발전에 대한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기술이 여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 같다. 애플 제품을 사면 멋져 보일 것이라는 괜한 상상도 불러일으킨다. 2007년 맥월드에서 애플이 첫 스마트폰을 내놓을 때가 그랬다. “1984년 우리는 매킨토시를 내놓았습니다. 그것은 애플이 아니라, 전체 컴퓨터 산업을 변화시켰습니다.” “2001년 우리는 아이팟을 내놓았습니다. 그것은 음악을 듣는 방식이 아니라, 전체 음악 산업을 바꿔 놓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전화(phone)을 재창조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아이폰(iphone)'이라고 부릅니다.”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한 청중들은 그의 말 한마디가 끝나자마자 열렬한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애플이 내놓은 스마트폰은 다를 것이라는 믿음을 보내 준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연설은 이어진다. “스마트폰은 그다지 스마트(영리·Smart)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스마트폰의 복잡한 버튼(자판)을 없앴습니다. 그 대신 ‘거대한 스크린(Giant Screen)'을 제공합니다. 우리가 해냈습니다. 컴퓨터에 마우스를 도입하고(1984년 매킨토시), MP3플레이어에 클릭휠(2001년 아이팟)을 도입했던 것처럼 아이폰에는 멀티 터치를 제공합니다. 물론 우리는 특허도 냈습니다.” 그 때 카메라가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 열렬히 환호하는 청중들을 비췄다. 그들의 표정은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에서 활력을 되찾고 뭔가 영감을 얻었다는 표정으로 흥분돼 있었다.  이러한 스티브 잡스 프레젠테이션의 매력은 그의 타고난 끼와 솜씨, 다른 CEO들의 연습량을 훨씬 초과하는 계속된 리허설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스티브 잡스 프레젠테이션의 7가지 기술을 설명하는 마지막 기술은 기술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창업했지만, 독선적인 성격과 앞선 기술에 대한 고집 때문에 회사에서 쫓겨났지만, 조지 루카스로부터 필름 애니메이션 회사를 사들여 ‘픽사'를 만들었으며, 다시 애플에 복귀했다. 그가 겪은 파란만장한 인생 경험과 도전 자체가 제품 개발 철학부터 기업 경영 철학, 심지어 프레젠테이션 노하우에까지 깃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많은 경험과 도전을 헤쳐 나갈 때 내 나름의 멋진 프레젠테이션이 완성된다. 그것은 순전히 우리의 몫이다. - 류현정 / 전자신문 국제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