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만남

양희 할머니

南塘 2022. 3. 1. 08:47

 

  우리는 은혜와 사랑을 근본으로 살아간다. 이를 혜애위심(惠愛爲心)이라 한다. 필자인생에 있어 혜애위심을 실천한 몇 분이 있다. 특히 어린 시절 이웃에 사시던 양희 할머니이다. “양희 할머니는 매우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팔순이 넘은 연세 임에도 삼백육십오일 하루도 거르지 않으시고 새벽 4시 명동에 위치한 제천제일감리교회로 새벽기도를 다녀오신다.(필자가 초등학교 신문배달 일을 하면서 매일새벽에 인사를 드렸음으로 기억이 있다.) 양희 할머니께서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라고 말씀하셨다. 마음을 깊게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

 

  팔자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선친 사업이 절망하여 고랫등 팔작(八作) 기와집을 잃었다. 고랫등 기와집에서 넉넉하게 살지는 못했으나 집 없는 서러움은 당하지 않았다. (산하제한 정책이 시행된 시기에는 가정마다 아이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많은 가정은 셋집을 얻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가사(家事)가 기울어 다른 집을 얻어서 이사를 갈 형편이 되지 못해서 선친(先親)과 선비(先妣)께서는 살고 있는 집 앞의 언덕을 다듬어 허름한 집을 지었다. 여름에 시작하여 겨울 초입에 서너 달 걸려 집이 완공을 앞두고 조금 이르게 입주를 하게 되었다. 새집에 입주하는 기분 좋은 날 늦은 밤에 기왓장 깨지는 소리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 소리가 들렸다. 자다가 봉창이란 말이 맞을 것 같다. 기왓장을 깨고 온갖 욕을 펴부은 사람은 이웃 주민 양희 아버지였다. 양희 아버지는 제천에서 소문난 주먹이었다. 사태가 발생하자 동네사람들이 나와서 난리를 정리했다. 문제는 새로 지은 필자 집의 정면 우측 처마 끝이 옆집과 경계와 겹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만 해도 내 집과 남의 집 경계를 따지는 시대가 아니었으며 집집이 담장도 없던 시절이었다. 집의 경계가 관습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엄격하게 보면 건축법을 위반한 것이다. 그날 선친께서는 당신보다 젊은 사람에게 봉변을 당했다. 미안하다는 말 외에 아무말씀하지 않으셨다. 어린 자식이 볼 때도 속상한 일이다. 그리도 며칠이 지나 집이 완공되었다. 동네 많은 분들이 축하를 해 주셨다. “양희 할머니기 오셨다. 완공 전 양희 아버지소란사건으로 마음이 많이 불편하셨다며 사과를 하셨다. “동석이네집 행복하고 잘살기를 할머니께서는 매일 기도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양희 아버지를 불러 사과 시키고 재발방지를 약속한 자리에서 평생을 베풀고 살아도 하나님께 죄를 용서 받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이 죽더라도 절대 남에게 해를 가하는 행동은 해서는 인된다고 하셨다. 이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들려 필자의 가정의 행복과 안녕을 기도하며 마음을 나누어 주셨다. 진정한 사과를 하신 것이다. 사과는 사과를 받는 사람의 받아 드려야 진정한 사과이다. 양희 할머니께서는 필자가 중학교 3학년 때 작고하셨다. 교회의 신도들과 동네 어른들이 장례를 모셨다. “양희 할머니께서는 평생 네 벌 정도의 옷을 착용하신 것으로 기억된다, 철마다 한 가지 옷만 입으셨다. 작은 가방하나에 성경을 넣어 다니셨다. 그리고 가방에는 동네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사탕을 넣어 다니셨으며 만나는 아이들에게 사탕 두 개씩 나누어 주셨다. 양희 할머니께서는 매우 검소하고 깔끔하게 생활하셨다. 굳건한 신앙으로 평생을 하나님과 이웃과 함께 사셨다. 할머니께서는 한 번도 교회에 오라고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 신앙의 실천은 사랑 나눔으로 보여 주셨다.

 

  필자도 머지않아 양희 할머니나이가 될 것이다. 필자는 혜애위심(惠愛爲心) 살았나를 물어보면 그렇다고 할 자신이 없다. 양희 할머니같은 신앙심도 없으니 비빌 언덕조차 없다. 이제 더욱 바빠지는 마음은 어떻게 이웃과 나누고 사회에 무엇을 보답할 것인지 깊은 생각을 갖게 된다. 사람은 살면서 많은 부아로 가슴앓이를 한다. 부아를 내려놓고 겸손과 나눔을 생각할 때이다. “양희 할머니처럼 말이다. 2022.01.10.

 

각주) 제천 제일교회는 교파가 기독교감리교로, 19078월에 창립되었다. 제천시에서 제일 먼저 창립한 교회는 제천시 백운면에 있는 백운교회로 1904년에 장로교 교회로 개척되었는데, 1909년에 감리교로 바뀌었다. 그러므로 최초의 감리교 교회는 제일교회라 할 수 있다. 특히 제천 제일교회는 한국인 최초의 감리교 목사이자 한국 감리교를 이끈 선구자인 최병헌 목사가 전도한 곳으로 의미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