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행전동 열차에서 소환된 화서동 기억
서울을 오가는 일이 많은 나는 전철보다는 기차를 주로 이용한다. 기차가 아니면 자가용을 이용한다. 그러나 오늘은 전동열차를 탄다. 오늘은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행되는 날이다. 평소 같으면 붐비지 않던 시간대인데 전동열차 승객이 많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매탄권선역까지 그리고 전동열차를 타고 수원역에서 신도림행 급행전동열차로 갈아탄다. 서울로 가는 길에 전철을 이용한 기억이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수원서 서울역까지 무궁화호 열차를 이용해도 2600원, 장애인인 나는 1300원이다. 굳이 복잡한 전동열차를 이용할 이유가 없었다. 편리함에 익숙해져서 그렇다. 그런데 오늘은 그 익숙함이 적용되지 않는다. 오늘은 수능일이라 출근시간대 열차표가 사전예매가 완료되어 표가 없다. 입석으로 이용하려고 해도 이동 시간대 열차가 없는 것도 이유였고 그냥 전동열차를 타고 싶었다. 오전 9시30분 거래선 미팅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인터넷 조회를 통해 최단시간 가능한 급행전동열차를 이용한다. 전동열차는 만석이다. 다리가 불편한 나는 노약자나 장애인석에 앉지도 못한다. 나보다 더한 약자에게 양보한다. 고통이 따른다. 임산부석에 멀쩡해 보이는 50대 여자가 앉자있다. 눈살 찌푸려지는 전동차 안이다.
수원역일 출발하여 화서동을 지난다. 화서동은 내게 있어 남다른 곳이다. 젊은 날에 초상이다. 결혼 초기 1986년부터 92년까지 살았던 수원 도시 끝 마을 화서 오거리에서도 더 끝 동말 마을에서 350만원 전세를 살았다. 방 두 칸에 작은 부엌이 딸려 있고 화장실 겸 욕실은 외부에 있었다. 그 세월 ! 살아남기 위해서 살았다. 굶지 않는 것이 최대의 목표였다. 가난에서 벗어 날수는 없지만 어린자식들 만큼은 삶에 상체기를 주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일했다. 삼성전자 생산현장에서 매월 잔업(초과근무) 150시간에서 200시간을 했다. 새벽별 보고 출근하고 늦은 밤 달을 보고 퇴근 했다. 그렇게 일해서 손에 쥔 급여는 13만원에서 16만원이다. 우리 부부와 어린 딸들과 부모님, 동생 셋이 살아 내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금액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내는 허구한 날 배를 골았다(굶었다의 울산 사투리)고 한다. 동네 좋은 어른들이 계셔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가끔 아내가 이야기한 한다. 화서동 동막에 살 때 ‘은숙 할머니께서 때때로 식사와 반찬을 챙겨 주셔서 어려움을 이겨 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고마운 분이다. 우리가 살만한 환경이 되었을 때 아내와 함께 두 번 정도 찾아 뵈은 기억이 있다. 아내는 나 모르는 눈물도 많이 흘렸을 것이다. 나는 출근하면 회사에서 아침, 점심, 저녁 식사와 중간 참이 제공되니 고생하는 아내의 심정을 십분 알지 못했다. 참 바보였다. 후회되는 것이 많았다. 그때 조금 더 아내를 챙기지 못했던 나 자신을 자책된다. 마음이 짠해진다. 그런 시간을 견디고 모진 세월 풍파를 이겨내고 우리 부부는 살아 냈다. 화서역을 지나는 전동열차에서 잠시 스치고 간 결혼 초기 아픈 기억들을 서호(西湖)는 기억할까? 서호는 잔잔한 물결에 하늘 구름만 드리어 받고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마움과 감사한 아내이다.
운명은 극복하는 것이다. 철커덕 거리는 전동열차에서 서서 1시간 30분을 이동했다. 우리 인생은 철커덕 거리면서 레일 위로 달려간다. 교차되지 않는 평행선이 전동차를 달리게 하는 수단이 되듯이 말이다. 나는 오늘 잊고 있던 느림에 미학과 배려의 따스함에 관하여 깊은 미안함을 느낀다. 여백이 없이 빡빡하게 살아 왔다. 쫓기고 살지 않아도 되는데 무엇 때문에 빨리빨리 완벽하게 그런 나는 느림이 허용되지 않았다. 타인에 대한 폭 넓은 배려는 있었을까? 아니었다. 주어지고 만들어진 환경이 나를 몰아세운 것이다. 그런 습관이 몸과 머리에 배어있다. 진심은 따뜻함을 나누고 싶은데 실제 행동은 아니다. 베이비붐어의 사회운영 후유증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31년 삼성에서 세뇌된 로봇 행동학 후유증이다. 오늘 합정동에서 만난 옛 동료 브라질 주재로 나와 깊은 인연을 맺었던 추부장과의 대화에서도 서로가 확인했다. 삼성 출신들의 특별함은 사회윤리성이다. 사물을 평가하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정의와 윤리적 관점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삼성출신들은 사회 적응 시 부도덕, 부정, 대충, 정당히, 안되면 말고가 없는 삼성의식 후유증으로 느림과 배려의 부족이 있다. 전동열차에서 생각한다. 느려도 다소 불편해도 자리에 앉은 사람이나 서서 가는 사람이나 무표정한 모습이지만 저들의 삶도 의식과 관계없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 내는 것이다. 나도 그 범주에서 친구도 만나고 소주도 한잔하고 실없는 소리도 하면서 어울려져 살아가고 있다. 합정역을 지하도를 빠져 나오면서 이 겨울이 싫지 않는 이유는 오늘 내가 살고 있는 이유가 큰 꿈이 아니라 소수한 생활이 행복한 날이기 때문이다.
2020. 1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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