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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바이러스 - 강건우의 절대음감은 유전일까

南塘 2008. 11. 15. 11:20

[흥미로운 과학, 호기심을 채우자 3편] 베토벤 바이러스 - 강건우의 절대음감은 유전일까?/ 예술 속 과학 찾기 
  

음악과 미술에도 과학의 원리가 적용되거나 담겨 있을까? 대답은 물론 ‘그렇다'이다. 단지 우리가 제대로 모를 뿐. 고대로부터 음악은 수학과 밀접하게 연관을 맺어 왔으며,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등장하는 강건우의 절대음감은 유전이다. 빠르기 ‘모데라토'는 사람의 심장박동수와 일치한다. 음악에서부터 미술, 조각 등 다양한 예술작품 속에 숨어 있는 과학을 만나 보자.


어떤 음을 듣고 고유한 음높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떤 음악을 한 번 듣고 통째로 음을 외워 버린다면….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는 이런 능력을 가진 인물이 등장한다. 젊은 트럼펫 주자이자 지휘자로 나오는 강건우. 그는 절대음감의 소유자다.

21세기 들어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절대음감은 유전이다. 일란성쌍둥이와 이란성쌍둥이를 대상으로 음높이 지각능력을 비교한 실험에서 유전자가 동일한 일란성쌍둥이끼리 음높이 지각능력이 비슷하게 나타났고, 다른 연구에서는 절대음감에 하나의 유전자가 관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절대음감을 유지하려면 음악을 많이 접하고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음악가 집단에 절대음감을 소유한 사람의 비율이 높은 이유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현의 길이를 바꾸면 음높이가 달라지고 현 길이의 비가 2:1일 때 두 음이 가장 조화로운 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중세시대 서양대학에서는 철학이나 신학에 앞서 음악을 배워야 했다. 음악을 이렇게 중시한 이유는 그 수학적 성격 때문이다. 음악은 물론 춤, 회화, 조각 같은 예술 속에서 과학을 찾다 보면 인간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언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절대음감 잃어

인간의 음악이나 새의 노래는 생존 자체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리드미컬한 소리를 내려면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고 이런 소리 탓에 자신의 위치가 천적에게 발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영국의 찰스 다윈은 인간의 음악이 공작의 화려한 꼬리처럼 짝에게 과시하는 수단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많은 새들이 주로 번식기에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우리 조상들도 멜로디와 리듬을 이용해 구애했을 것이란 뜻이다.

음악과 춤으로 건강한 결혼상대 구별해
2000년에 나온 책 <음악의 진화>에서는 병들거나 상처 입거나 늙어서 짝짓기에 부적합한 상대를 구별해내는 방법이 바로 음악과 춤이라고 설명한다. 리듬에 맞춰 오랫동안 몸을 움직이는 것은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만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또 리듬이 세련되고 곡목이 다양할수록 구애자의 지능과 운동신경이 뛰어나다는 증거라고 한다.

진화심리학자에 따르면, 대중음악 작곡가는 사춘기를 겪으며 곡을 쓰기 시작해 이성관계가 빈번한 청년시절에 최고조에 올랐다가 나이가 들어 자녀가 생기면 곡을 많이 쓰지 못한다. 적지 않은 사람이 사춘기 때 기타를 열심히 배우고 음악을 많이 듣는다. 그래서 대중가요의 가사는 십중팔구 사랑이야기다.

인류, 직립보행을 시작하면서 음악능력 갖춰
흥미롭게도 인류는 직립보행을 하기 시작하면서 음악 능력을 꽃피웠다고 한다. 두 발로 걷거나 달리려면 네 다리로 움직일 때보다 정교하게 몸을 움직이며 균형을 잡아야 한다. 즉 발을 내딛고 구르는 타이밍이 완벽하게 맞아야 두 발로 움직일 수 있다. 이때 리듬감은 필수. 직립보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침팬지가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지 못하는 이유다.

네안데르탈인은 절대음감 소유자
음악은 언어보다 훨씬 앞서서 진화해 왔으며 언어가 발명되기 전까지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2004년에 나온 책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에는 25만 년 전쯤 유럽에서 진화해 3만 년 전쯤 멸종된 네안데르탈인이 현대 인류보다 음악 능력이 뛰어났다고 설명한다. 네안데르탈인은 언어를 발명하지 못해 리듬과 운율이 실린 발성이나 제스처로 의사소통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음악을 통한 의사소통에서 음높이 자체가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에 네안데르탈인은 절대음감을 소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절대음감을 잃어버린 대신 언어를 통해 음악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현생 인류는 언어를 발명해 정보를 교환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절대음감은 필요 없어졌다. 공교롭게도 사람은 절대음감을 갖고 태어나지만 성장해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능력을 잃어버린다. 물론 절대음감을 유전적으로 타고난 사람도 일부 있다. 한편으로 언어가 정보교환의 역할을 맡으면서 음악은 감정표현이나 정서전달 쪽으로 특화됐으며, 언어는 음악과 결합해 노래로 거듭나면서 음악을 더 풍요롭게 만들기도 했다.


일반인의 심장박동수는 ‘모데라토'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음악을 들으면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성욕이 충족될 때 반응하는 뇌 부위가 활발하게 활동한다. 니체가 ‘우리는 음악을 근육으로 듣는다'고 말했듯이 음악의 멜로디, 템포, 음조 등도 맥박, 심장박동수 등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음악의 빠르기 가운데 모데라토(중간 빠르기)는 일반인의 심장박동수와 일치한다.

음악은 맥박을 빠르게도 느리게도 해 치료효과 있어
아시아나 항공은 기내에서 음악을 틀어 승객들이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는 모데라토보다 느리며 멜로디가 반복되는 음악으로 맥박수가 적어지고 마음이 안정되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마린 보이' 박태환 선수가 수영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긴장을 풀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또 음악으로 자폐아의 마음을 열고 만성통증에 시달리는 환자의 고통 강도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

음악은 춤의 동반자이듯이 음악치료뿐 아니라 무용동작치료도 있다. 무용동작치료는 움직임으로 사람의 특성을 파악한 뒤 그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고 감정이나 욕구를 동작으로 표출할 수 있도록 하는 심리치료방법이다. 전쟁후유증에 시달리는 정신질환자, 식사장애 여성, 성폭력 피해여성에게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과학적으로 보면 숨쉬기도 힘든 상태

오래된 명화는 칙칙하게 어두운 경우가 많다. 원래 검게 그린 그림이 많았을 까닭이 없다. 밀레의 <만종>이 대표적인 예다. 황혼을 그린 작품이라 다소 어둡기야 하겠지만 밀레가 그렸을 당시 그림은 지금처럼 칙칙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종은 1857~1859년에 그려졌는데,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은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공장이 들어서고 자동차가 증가해 매연에 시달렸다. 일부 물감에는 공해의 주범인 아황산가스와 반응해 검게 변하는 성분이 포함돼 있다. 결국 공해 때문에 그림이 검게 변한 것이다. 수채화보다 유화에 이런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고 한다.

 

유화는 15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얀 반 에이크가 창시했다. 그는 식물성 불포화지방산인 아마인유를 사용해, 달걀 노른자를 이용한 이전의 템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붓질을 할 수 있었다. 생생하고 화려한 색감과 눈부신 광택도 유화의 특징이다. 불포화지방산 물감은 녹는점이 낮아 상온에서 액체 상태였다가 시간이 지나면 불포화성분이 굳는 원리다.

서양화뿐 아니라 한국화도 주목할 만하다. 최근 신윤복과 관련한 드라마나 영화가 제작되면서 그의 작품 <미인도>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윤복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섬유가 가는 토종 닥나무로 만든 한지에, 진사(辰砂)라는 광물로 속치마고름의 붉은색을 표현하고 조개껍질을 빻아 만든 호분으로 흰색을 구현해 미인도를 완성했다.

회화는 물론 조각도 과학으로 분석해 볼 수 있다. 로댕의 대표작 <생각하는 사람>을 해부학적으로 보면, 복부와 흉부 근육에 힘을 잔뜩 주고 있어 횡격막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생각하기는커녕 호흡곤란을 일으킬 판이다. 사실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의 문 위에 걸터앉아 지옥의 인간군상을 내려다보며 깊은 고뇌에 빠진 모습이다.

 

기원전 5세기 미론의 조각 <원반 던지는 사람>은 스포츠과학으로 보면, 허리가 휘어 있고 원반의 투사각이 너무 높아 운동선수가 이대로 따라 하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물론 예술작품은 과학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표현한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게 우선이다.


- 이충환 /
<과학동아> 부편집장.
서울대 대학원에서 천문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고려대 과학기술학 협동과정에서 박사과정(과학언론 전공)을 수료했다. 1999년부터 과학전문기자 활동을 시작했으며 옮긴 책으로 <상대적으로 쉬운 상대성이론>, <빛의 제국>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는 <블랙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