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 중 <다크 나이트>처럼 깊숙이 최신 과학 지식을 파고든 영화는 없었다. 기존의 영화들은 과학적 사실을 단순히 나열하거나 표현하는 수준이었지만 <다크 나이트>는 과학적 결과를 내용에 포함시켜 관객 스스로 느끼고, 깨우치게 만들었다.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게임 이론을 포함한 최신 과학 지식을 접할 수 있다. <다크 나이트>에서는 죄수의 딜레마, 카오스 이론, 복잡계 경제학, 원폭 이후 폭발물의 위험성, 휴대폰 위치 추적 등의 다양한 과학 지식이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재구성되고 있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이 시대의 진정한 배우 히스 레저에게 추모의 뜻을 전한다.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는 그간 영화 팬들로부터 외면 받던 해외 블록버스터의 인기를 다시금 뜨겁게 달구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꺼져 가던 할리우드 대형 영화의 불씨를 활활 되살려 놓은 셈이다. <다크 나이트>는 개봉 후 단숨에 4억 569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역대 북미 흥행 7위인 <스파이더맨>을 가볍게 추월했다.

<다크 나이트>의 흥행 요인으로는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으나 인간 심리와 과학 지식을 적절히 배합한 점이 특히 돋보인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게임 이론을 포함한 다양한 과학 지식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죄수의 딜레마, 카오스 이론, 복잡계 경제학, 원폭 이후 폭발물의 위험성, 휴대폰 위치 추적 등이 바로 그것이다.
<다크 나이트>는 <슈퍼맨>과 같은 영웅 영화(Action Hero Movie)보다는 차라리 공포 영화(Horror Movie) 또는 스릴러(Thriller)에 가깝다. 관객은 상영 시간 내내 최고의 긴장감을 만끽한다. 거기에 최신 이론으로 무장한 시나리오는 관객의 당연한 기대조차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사실 이 영화의 매력은 관객들의 상식과 기대를 어긋나게 함으로써 오히려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데 있다. 일찍이 하이젠베르크는 ‘과학적 결과는 현재까지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언어나 지식으로는 표현하기도 어렵고 이해시키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크 나이트>는 ‘이해시키기 어렵다'는 점을 역이용해 새로운 과학 지식을 영화 내에서 창조적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 삶에서 과학은 물이나 공기와도 같이 없어서는 안 될 필수 학문이다. 언제쯤 우리 영화에도 새로운 과학 지식을 배경으로 한 히트 작품이 나올지 궁금하다.
게임 이론을 활용한 심리 과학적 장면
게임 이론은 ‘죄수의 딜레마'로 불리는 기본 게임에서부터 시작한다. 게임 이론은 공범을 각각 다른 방에 격리한 채 동시에 심문하면 상대방의 자백이 두려워 범죄 사실을 고백할 확률이 높다는 원리에 기반하고 있다.
히스 레저가 분장한 악당 ‘조커'는 두 배에 나눠 타고 고담시를 탈출하는 시민팀과 죄수팀에게 무시무시한 게임을 하도록 유도한다. 배 안에 폭발물을 가득 채워 놓고 상대방의 배를 먼저 폭파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죄수는 자백했을 경우와 부인했을 경우의 이득과 손실을 비교해 일반적으로 공범과의 협력보다는 자백을 선택하게 된다. 따라서 죄수의 딜레마를 생각한다면 각각 배에 탄 두 팀은 살아남기 위해서 한시라도 빨리 버튼을 눌러야만 한다. 그러나 여기서 영리한 플레이어라면 게임 이론의 법칙 중 ‘반복 게임'과 ‘배수의 진' 전략을 생각해 볼 것이다.
‘반복 게임'은 이기적인 인간도 앞으로 계속될 반복 게임을 생각하며 현재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을 희생하고 이타적이 된다는 원리이다. 사실 게임 이론은 흥미롭게도 이타심조차 이기심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그래서 게임 이론은 아래 도표와 같이 맹자의 성선설(性善說)보다는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을 따른다고 볼 수 있다. 이 이론은 사람들 마음 속에 이기심이 내재하고 있음을 가정하고 있다.
학자에 따라서는 이타심을 기본으로 하여 이기심으로 해설을 확장해 나가기도 하는데 아직까지는 존 내쉬 등이 정리한 이기심에 기반한 이론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심지어 최근의 일부 진화론 과학자들은 인간의 이타심을 인간 속에 내재한 유전자로 설명하기도 한다.

‘배수의 진'은 중국 한나라의 명장 한신이 적과 싸울 때 강을 등지고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최선을 다해 싸운 것에서 유래된 말이다. 한신의 군대는 강을 건널 수 있는 배나 다리를 모두 불태워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불태워 아군에게는 용기를, 적군에게는 공포감을 유발시켰다.
<다크 나이트>의 시민팀, 죄수팀 중 어느 한 팀이 배수의 진 전략을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게임 메이커인 조커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상대방 배에 탄 팀만 알 수 있도록 자신의 선택을 은밀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상대방에게 반공개적으로 자신의 선택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 위협을 가할 수 있다. 그런 후에 심리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거나 협력을 유도할 수 있다. 다른 배에서 누군가가 죄수의 배에서 행해지는 신호를 알아채는 장면이 나온다면 영화 속 게임 스토리는 보다 리얼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현실감은 오히려 재미를 반감시킬 수도 있으므로 이야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폭파 키를 눌러야 할지 말아야 할 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선장 앞에 키를 요구하는 험상궂은 죄인이 출연하면서 영화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상대방 배를 폭파해서 자신들의 배를 구하자는 아우성이 터져 나오자 폭파 여부에 대한 투표를 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폭파하자는 의견의 근거는 상대방이 약탈을 일삼는 죄수라는 점이다. 죄수의 전부가 사형수는 아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관객들은 이 부분에서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반달리즘'과 ‘이기적 유전자'를 엿볼 수 있다.
다수에 의한 자정(自淨) 원리를 믿고 투표를 하게 하면 특수한 사안은 ‘반달리즘'적 사고로 올바른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 수 있다. 공개 백과 사전인 위키백과에 따르면 반달리즘은 ‘자유를 활용하여 고의로 뜻을 왜곡하는 현상' 등을 의미한다. 즉, 투표는 상대방 배에 탄 사람들이 죄수라는 점과 투표의 결과가 참여자의 생존과 관계 있다는 점 때문에 자정 능력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책 <위험한 생각들>에서 ‘죄는 미워해도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속담을 인간 유전자의 과학적 특성을 통해 설명한다. 도킨스의 과학 이론이 영화 속의 시민팀과 죄수팀에 의해 어떻게 나타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카오스 이론이 나오는 장면
조커가 카오스(Chaos)를 언급하는 대목도 걸작이다. 데카르트-뉴톤식의 기계론적 사고에 얽매어 ‘계획과 결과'로 세상을 보는 시각과 아인슈타인-하이젠베르크 이후 ‘상대적이고 불확정적'으로 세계를 보는 시각을 비교하여 검사에게 설명한다. 강직한 검사의 등장도 이런 과학 지식을 표현하기 위한 복선인 셈이다.
카오스 이론은 프랙탈(Fractal) 이론 등과 결합하면서 ‘무질서의 질서'라는 MIT대 폴 크루그먼 등이 제안한 ‘복잡계 경제학'의 원류가 되었다. 카오스 이론은 최창현 교수의 <복잡계로 바라본 조직관리>에서 언급되었듯이 질서정연하게 정열된 형태만 질서가 아니라 일반 자연계의 무질서해 보이는 모습도 하나의 질서가 될 수 있다는 원리의 바탕이 된다.
최근 애플의 앱스토어(AppStore) 등이 질서정연한 플랫폼에서 무질서한 공개형 어플리케이션을 판매하는 것도 복잡계 경제학을 응용한 좋은 예다. 이런 질서와 무질서를 혼합한 신(新) IT 경제 원리를 플랫폼 경제학(Platform-Economics)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다크 나이트>에는 폭발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인류는 현대 무기의 잔인한 파괴력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첨단 무기의 등장은 적군의 파괴뿐 아니라 인류의 파멸도 가져올 수 있음을 시사한다.
휴대폰 위치 추적은 애플의 아이폰에 의해 본격적인 활동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신기술이다. 아이폰은 3G와 무선랜 방식을 이용해 위치를 측정한다. 위치 추적 면에서는 GPS 방식의 네비게이터들과 유사하지만 무선랜과 셀룰러망을 활용하는 기술을 사용해 해당 거리 및 장소에 점점 접근해 가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현재는 주로 본인의 위치를 알아내는 위치 정보 서비스 용도로 사용되고 있지만 향후에는 다양한 서비스와 결합될 예정이어서 휴대폰 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분야이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보안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어떻게 보안성과 편리성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지에 대해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과학 지식을 배경으로 한 우리 영화를 기대한다
최근에 상영된 <인디아나 존스 4 -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인크레더블 헐크> 그리고 많은 인기를 끌었던 <매트릭스> 시리즈 등에서도 새로운 과학 지식들이 언급되었지만 <다크 나이트>처럼 깊숙이 파고든 영화는 없었다. 이는 다른 영화들은 과학적 사실들을 단순히 나열하거나 표현하는 수준이었지만 <다크 나이트>는 과학적 결과를 내용에 포함시켜 관람자들이 스스로 느끼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황후화>, <영웅>, <님은 먼 곳에> 등 동양의 영화에 나오는 훈훈한 인간 감정의 연출은 아직 서양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인간미가 흥행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보는 사람에게는 따뜻한 감동을 선사한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김성진 / 삼성전자 New Radio Technology그룹(기술원) 전문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