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26 16:40 in 박상주가 만난 사람/박상주가 만난 21세기 개척자

최지성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총괄사장
'글로벌 장터'의 세계 1등 세일즈맨
'글로벌 장터'의 세계 1등 세일즈맨
별명은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눈’ 이다. 좋건 싫건 남들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다. 최지성(55)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총괄사장은 ‘장사꾼’ (혹은 ‘보부상’ ), ‘기동타격대’ , ‘독일병정’ , ‘최틀러’ , ‘딸깍발이’ 등으로 불리운다. 삼성전자에 입사한 지 올해로 꼭 30년째인 최 사장. 세계 구석구석 물건을 팔러 돌아다니면서 ‘장사꾼’ 의 별명을 얻었다.
지난 한해 동안에만 19조원어치의 물건을 판 ‘대한민국 간판 장사꾼’ 이다. 추진력있고 깐깐한 일처리는 그에게 ‘기동타격대’ , ‘독일병정’ 이라는 또 다른 별명을 안겼다. 지난달 9일 오후 2시쯤 독일 하노버의 정보통신(IT) 전시회 세빗(CeBit)의 삼성전자 바이어 상담 부스. 전세계에서 몰려든 바이어와 고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그 북새통속에 빈 방 하나를 찾아 1시간 40분 동안 최 사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물건을 팔기 위해 쉴새없이 돌아다녀야한다. 최 사장은 지구촌 장터를 돌아다니기 위해 한해 100일 이상 ‘외박’ 을 한다. 지난 십수년간의 항공사 누적마일리지가 200만 마일에 달할 정도다. 물론 삼성전자 전용기나 외국항공사 등을 이용한 마일리지는 포함되지 않은 수치. 유럽근무 시절 최 사장의 잦았던 ‘무박 3일 출장’ 은 일에 대한 그의 끈질긴 집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1985년 1월 삼성반도체통신(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문)의 유럽 지사장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지사장이라고 해봤자 삼성물산 독일 프랑크푸르트지사에 책상하나를 얻어 사무실을 둔 ‘1인 지사장’ 이었지요. ‘삼성’ 이나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 모두 세계시장에서 거들떠 보지도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막막한 상황이었어요. 궁리끝에 유럽 각국의 전화번호부에서 ‘전자’ 와 ‘PC’ 라는 상호만 나오면 무조건 견본제품을 들고 찾아갔습니다. 노르웨이에서 포르투갈까지 유럽 12개국을 구석구석까지 고객이 있다면 안 간곳이 없었지요. 그때 이탈리아 토리노시 인근의 이브레아로 ‘무박 3일 출장’ 을 자주 갔어요. 밤 10시쯤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밤새도록 달리면 다음날 아침 이브레아에 도착합니다. 낮시간 동안 충실하게 고객들을 만날 수 있었지요. 일을 본뒤 저녁 늦게 다시 독일로 향하여 달리면 새벽 2시전에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습니다. 왕복 1300km가 넘는 고된 출장이었어요.” 뿌린 만큼 거두는 게 세상의 섭리일까. 최 사장의 실적은 1985년 첫해 100만 달러에 불과했으나 1986년 500만 달러, 1987년 2500만 달러, 1988년 1억2000만 달러를 넘겼다. 해마다 무려 500% 이상의 판매 신장률을 보이는 ‘파죽지세(破竹之勢)’ 의 성과였다. 삼성 반도체 신화의 첫 장을 연 주인공이 된 셈이다. #기동타격대 = 14년간의 ‘반도체 장사꾼’ 생활을 마친 그는 디스플레이, TV, 디지털미디어 등 새로운 분야를 떠맡으며 또 다른 신화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삼성전자의 기동타격대 역할을 한 셈이다. “1998년 9월, 디스플레이사업부장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해 1000만대를 넘지 못했던 연간 판매량을 2년반 만에 2000만대 이상으로 끌어올렸어요. 2001년, 고전을 면치 못하던 TV 사업까지 떠맡으면서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2003년, 정보통신부장관으로 발탁돼 삼성을 떠난 진대제 사장을 이어 디지털미디어사업을 맡았습니다.” 요즘 그는 TV 사업에 미쳐산다. 올해 업계 최초로 100억달러 어치 이상의 TV를 팔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 “디지털 기술이 가전산업을 부활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디지털 르네상스’ 라고 부릅니다. 올해 TV 판매 대수 및 금액에서 또 하나의 기록을 낼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독일병정 = 삼성전자는 세계 33개국에 생산법인 15개, 판매법인 37개, 지점 25개를 두고 있다. 연구개발(R&D) 거점도 8개국에 11개소나 된다. 대부분 최 사장이 직간접으로 관할하는 곳들이다. 이들을 1년에 한번이라도 돌아보려면 없는 시간은 만들어야하고 있는 시간은 쪼개야 할 판이다. 게다가 적당히 넘어가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성격이다. 밥먹듯 자주가는 출장이지만 자로잰듯 정확하게 일정을 짜고, 칼같이 업무를 처리한다. 삼성전자 초년병 시절부터 보여준 최 사장의 그런 업무처리 스타일은 그에게 ‘독일병정’ 이라는 별명을 안겼다. 전형적인 최 사장의 남미 출장일정을 살펴보자. “일요일 인천을 출발하면 같은 날 저녁에 뉴욕 도착, 주재원들과 저녁을 함께 먹을 수 있습니다. 다음날 오전 사무실에서 업무보고 받고, 점심 먹은 뒤 상점들을 들러봅니다. 오후에 마이애미행 비행기에 오릅니다. 마이애미 공항 도착 즉시 식당으로 직행합니다. 공항식당에서 마이애미 주재원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업무 보고받고, 새벽 1시 비행기에 탑승하지요. 새벽 4시반 브라질 마나우스에 도착합니다. 공항에 마중나온 법인장을 따라 호텔로 가서 샤워후 오전 7시에 아침을 먹지요. 오전 8시반부터 현지 공장 현황 보고 및 현장 시찰, 관계사 및 협력사 공장 방문 후 현지 간부들과 저녁을 먹습니다. 다음 날 아침 비행기로 4시간 반 걸리는 상파울루로 이동, 도착 후 사무실로 직행합니다. 업무 보고를 받은 뒤 상파울루 시장 방문, 주재원 및 현지인 간부들과 저녁식사 등의 일정이 이어집니다. 이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칠레 산티아고, 페루 리마, 콜롬비아 보고타 등에서 하루씩 묶으면서 비슷한 일정을 소화합니다. 멕시코 멕시코시티에 저녁에 도착해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날 아침 티후아나로 이동해 공장방문을 합니다. 그날 오후 차량을 이용,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로 옮겨 주재원 및 현지인 간부들과 저녁을 먹습니다. 밤 10시 LA 공항으로 이동해 다음날 0시50분 귀국편에 탑승하면 다음날 인천공항에 도착하게 됩니다. 총 9박10일의 숨가쁜 일정이지요.” 이름하여 ‘GS(최지성 사장의 이니셜) 루트’ . 최 사장과 함께 출장을 갔던 직원들을 통한 입소문을 타고 사내에 알려진 이후 임원들의 남미 출장 표준일정표가 됐다. 최 사장은 이처럼 시도때도 없이 외국출장을 다니면서 시차를 어떻게 극복하는 걸까. 건강관리는 또 어떻게 하는 걸까. “일을 즐기고, 일에 몸을 맡기면 건강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굳이 노하우를 이야기하자면 신체의 바이오리듬을 타는 거지요. 비행기나 차량으로 이동할 때 졸리면 자고 잠이 안오면 책을 읽습니다. 준비해간 책이 모자라면 비행기에 있는 모든 프린트물은 다 읽지요. 항공사 잡지들도 좋은 읽을거리 입니다. 현지에 도착하면 주재원들과 오래간만에 만나 딱딱한 업무 이야기만 할 수 없지요. 본사 이야기도 해주고 주재원들의 애환도 들어 주면서 한잔씩 주고 받다보면 거의 매일 취해서 호텔로 돌아오지요. 술이 수면제를 대신해 준 셈이겠지요.” 최 사장은 숱하게 미국과 브라질 출장을 다니면서도 나이애가라나 이과수 폭포 구경을 하지 못했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한가하게 유람할 틈을 내지 못한 탓이다. “나중에 퇴직한 다음에 뭐합니까. 그 때 아내랑 함께 다니려고 좋은 곳은 남겨두고 있습니다.” #딸깍발이 = 서울고 시절 최 사장의 별명은 ‘딸깍발이’ 였다. 조금이라도 잘못된 경우라면 선생님한테도 꼬박꼬박 따지고 들었기 때문이다. 1971년 서울대 무역학과에 들어갔다. 시시비비를 가리기 좋아하는 그의 눈에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 음모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교련반대를 외치며 거리에 나섰습니다. 지금 열린우리당의 원혜영, 이석현, 이목희 의원등이 당시 함께 데모를 하던 대학동기들입니다. 그 친구들에게 빚을 진 것 같아 경제 일선에서 더욱 열심히 일했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사람의 성정(性情)은 크게 변하는 게 아닌가 보다. 최 사장은 지연이나 학연을 찾거나 세상을 편하게 살려는 사람들을 아주 경계한다. “삼성 입사전에 다른 대기업에 시험 본 적이 있었습니다. 면접 과정에서 학연과 지연을 따지는 것을 보고 포기한 뒤 삼성을 택했습니다. 지금도 이런 저런 연을 내세워 접근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마이너스 점수를 줍니다.” 아래로 눈꼬리가 처져 한량없이 착해보이기만 하는 최 사장. 속은 참 무서운 사람이다. 하노버(독일)=parksangjoo@yahoo.co.kr ------------------------------------------------------------------------------
▲1951년 2월 강원 강릉 출생 ▲1970년 2월 서울고 졸업 ▲1977년 8월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 ▲1977년 7월 삼성물산 입사 ▲1985년 3월 삼성반도체통신 독일 프랑크푸르트 사무소장 ▲1993년 3월 삼성전자 이사보 ▲1995년 1월 삼성전자 메모리 영업이사 ▲1996년 1월 삼성전자 메모리 영업상무 ▲1997년 1월 삼성전자 반도체 판매사업부장 ▲1998년 1월 삼성전자 메모리 판매사업부장 전무 ▲1998년 9월 삼성전자 디스플레이 사업부장 ▲2000년 1월 삼성전자 디스플레이 사업부장 부사장 ▲2004년 1월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총괄사장(디자인센터장 겸직) ▲2005년 1월 영상 디스플레이 사업부장 겸직 기사 게재 일자 2006-0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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