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경영

불혹의 나이를 삼성전자

南塘 2007. 7. 22. 21:06
요즘의 ‘불혹(不惑)’은 더 이상 차분한 정물화가 아니다. 오히려 미풍에도 흔들리는 바람개비요, 들쭉날쭉한 나이테다. 복잡해진 세상 탓인가. 이제 중년은 원숙함이라기보다는 초조함이다.

 어느덧 40대 중반을 넘긴 안철수로부터 e-메일이 왔다. 2년여 전, 안철수연구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공부한다며 미국으로 훌쩍 떠나버린 직후다.

 “하루 종일 책을 읽어도 저녁 무렵이 되면 공부한 양이 얼마 되지 않음을 보면서 절망하곤 합니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오히려 초조한 마음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공부에 미쳐 있기에 절망하고 초조해하는지, 여전히 대단한 집념을 보이면서도 중년의 고민이 많은 듯했다. 올 들어 도착한 e-메일에서도 그는 기로에 선 우리나라 중년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다.

 “저도 주위를 돌아볼 틈도 없이 살고 있어 다른 대한민국 중년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쁠 때일수록 스스로 돌아보고 점검해 보며 방향과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생은 미지의 땅을 여행하는 것과 같아 자신의 발끝만 보고 정신 없이 걸어가기만 하다가는 미아가 돼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편지를 다시 열어 보면서 중년을 앞둔 삼성전자와 삼성을 이끌고 있는 중년의 삼성맨들을 떠올려 봤다.

 삼성전자가 설립된 때는 1969년. 1월생이므로 우리식 셈법으로는 얼추 불혹의 나이다. 그런 삼성전자가 요즘 위기라고 한다. 반도체의 부진은 그룹 전체의 구조조정 여파로 번지고 있다. 50대의 원숙한 중년 황창규 사장은 골프도 끊었고, 주요 보직도 내놨다. 중년의 삼성 리더들은 “잔치는 끝났다. 확실한 변화만이 돌파구”라고 말한다. 세계는 ‘사상 최대 초경제 호황(the greatest economic boom ever)’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는데(포춘·7월 12일 인터넷판 보도) 삼성에선 감원 이야기가 나온다. 혹 ‘발끝만 보고 정신 없이 가다 미아가 된 꼴’은 아닌지. ‘바쁠 때일수록 돌아보고 점검해 봐야 하는데 방향감각을 잃은 것’은 아닌지.

 안철수는 편지에서『Good to Great』(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 나오는 ‘스톡데일 패러독스’를 들려줬다. 스톡데일은 베트남 포로수용소에서 8년간 고문을 받으면서도 많은 미군 포로를 고향으로 돌아가게 만든 전쟁영웅. 스톡데일에 따르면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낙관주의자’가 아니라 ‘현실주의자’였다. 낙관주의자들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는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희망을 불어넣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부활절에는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일을 반복하다 결국 상심해 죽었다. 반면 현실주의자들은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각오하면서 이에 대비해 살아남았다.

 편지에서 안철수는 말했다.

 “결국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과 눈앞의 냉혹한 현실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생명 자체가 자연의 균형과 안정이라는 거대한 힘과 끊임없이 투쟁하듯, 개인과 조직 역시 안정과 끊임없이 싸워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개인이나 조직은 죽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암울해 보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동시에, 끊임없는 변화는 끊임없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긍정적인 면을 암시해 줍니다.”
 안철수는 올가을께 다시 e-메일을 보내 올 것이다. 새 편지가 도착할 무렵이면 중년 문턱의 삼성전자와 삼성 리더들도 변해가고 있을 것이다. 낙관주의자가 아닌 현실주의자가 돼 안정과 투쟁하는 삼성으로. Good에서 Great로.

정선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