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글씨 속에는 인생이 있다
글 : 공학박사 이동한
얼마 전 제일야당의 젊은 대표가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하여, 방명록에 남기 손 글씨가 뉴스가 되었다. 사라지고 있다. 필체를 가지고 각계각층에서 의견이 분분(紛紛)하다. “필적은 인격의 거울이다” 대체적으로 맞는 말 같다. 글씨를 보면 성격과 학력, 직업까지고 짐작을 한다. 기업에서는 이력서 글씨체를 보고 직무와 지원자 성향이 맞는지 등을 분석하는 사례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획을 그을 때의 힘, 자음, 모음, 문장 사이의 간격, 글씨의 정렬 상태 등이 사람의 성격을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미국 필적학회 창립자 휴고하겐 박사는 저서 '필적학'에서 "쾌활하고 태평하며 부드러운 글씨를, 대화 능력을 갖춘 사람은 둥근 글씨를 쓰고, 조용하고 완고하며 냉정한 사람이 각이 진 글씨를 쓴다."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시세에 이르러 손 글씨를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손 글씨로 쓰는 일기, 편지와 기업이나 공공기간에서의 서류는 모두 컴퓨터 OS 기반의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작성된다. 공공기간의 민원서류 신청과 은행의 계좌와 관련된 부분만 손 글씨 수기로 남긴다. 본인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손 글씨는 생활과 사회 환경영향으로 사용빈도가 적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아울러 붓(筆), 먹(墨), 종이(紙), 벼루(硯)의 문방사우(文房四友) 마저도 찾는 사람이 적어 산업의 기틀이 흔들리고 있다. 글자는 인류문명의 정정이 된 종이(Paper)와 더불어 인쇄술(Typography)의 근간이다. 글씨는 인생의 종합예술이다.
글씨는 선천적으로 잘 쓰는 글씨가 있는 반면 잘 쓰지 못하는 글씨도 있다. 그리고 아무리 교정을 해도 악필(惡筆)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글씨도 있다. 필자는 일곱 살부터 붓글씨를 썼다. 필자 자신만의 글씨가 완성된 것은 열여덟이 되는 겨울이다. 필자의 글씨 연습은 굵은 색연필로 글씨의 균형을 만들었다. 균형이 잡힌 이후에는 붓글씨로 연습을 했다. 붓글씨는 글씨의 가독성(可讀性)이 된다. 글씨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필자는 바탕체와 맑은 고딕체에 가깝다. 필자는 약 3년간 틈틈이 글씨를 썼다. 잘 쓰는 글씨체는 아니지만 종종 칭찬을 받기도 한다. 글씨는 글씨의 기준과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다. 위대한 서예가가 목표가 아닌 이상, 좋은 글씨는 가독성과 균형이 있으면 된다. 손 글씨를 쓰는 것은 비단 편지와 일기 그리고 업무용 보고서를 위해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글씨를 쓰면서 자신만의 서체(書體)를 만드는 것을 해 보았는가? 추자 김정희 선생과 같은 역사에 남는 명필은 아니더라도 글씨를 써 보면 기특한 일이 일어난다. 붓글씨를 쓰면서 느껴온 것을 정리해 본다. 첫째 먹(墨)을 갈아 보면 먹의 냄새에서 코끝을 자극하는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먹은 오래 갈아야 화선지에 농담표현이 좋다. 마음을 담는 글씨를 쓰는 준비에서부터 인내를 배우고 침착한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 둘째 글씨를 쓰는 자세에서 바름을 알게 된다. 바른 자세는 예(禮)를 나타내는 것이다. 선비정신을 이끌어내 완성 시킨다. 셋째 글씨를 쓰려면 명상을 통해 생각을 정리한다. 정리된 생각은 문장이 되어 글씨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습은 선(禪)으로 승화되어 인격이 완상되는 것이다. 넷째 써 놓은 문장의 글씨를 보면서 부족함을 알아 가는 것이다. 겸손(謙遜)을 배우는 것이다. 글씨는 사람의 인품이다. 글씨는 타는 나는 것이 아니라 인고의 노력을 통해 만들어 지는 것이다. 대기만성의 인생과 같은 것이다.
지난 4월 아폴로 11호의 삼인방 중에서 현대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마이클 콜린스가 9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그는 항상 삶의 도전 과제에 품위와 겸손으로 맞섰다.”(유족성명) 그렇다, IT사업으로 인하여 사라져 가는 손 글씨를 써보자 도전하는 과제이다. 자신의 인성과 인품을 만들어 보자 글씨에는 인생이 있다. 성공하는 인생을 글씨를 통해 만들어 보자. 2021.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