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의 만남

스물여섯 가을

南塘 2021. 6. 3. 22:32

스물여섯 가을

 

 

숨어서 살고 싶었던 세월

세상에 내어 놓고 싶지 않은 사실을

가슴 열고 마음 열고

아름답고 아름다운 청춘

() 그림() 노래()

 

옹기종기 포개어 자던 네 평 방

서북풍 한설에 이불 여미던 몸짓

푸른 소나무 울음 들킬까 두려워

황토벽 굴뚝에서 숨죽여 숨던

잊고 간직한 전설

 

노랑 은행 잎 바람에 날리는 헛웃음

하늘 놀란 천둥번개에 내리는 가을 비

속절없는 가슴앓이로 애태운 밤

지키지 못한 사랑의 손가락 언어(言語)

지금 생각해 보니 남은 건 후회

 

북소리 징소리 모아 부른 노래 속

스물여섯 가을 하늘에는

너는 없고 나만 있고 밤과 낮에

썼다 지운 너를 어찌할 수 없어

움츠려진 마음 끝에 실낱 보라색 얼굴

 

기운달 그리운 보름달

혹독한 여름 후에 다가선 가을

유리창에 그린 나 말고 너

미련은 그나마 호사(好事)

사랑을 못한 건 죄()가 되는 시간

 

1984.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