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파동에 관한 기억
1966년 연탄파동 격동기....
내가 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 3학년~6학년 이던 시절에 아픈 이야기지만 내겐 커다란 사회적 경험을 겪은 이야기다.....
419혁명, 516혁명(군사 구테타) 이후 잘살아 보겠다는 새마을 운동이 일어 나기 前 너무도 가난한 우리집 아침이면 양식이 없어 물로 빈속을 채우고 학교를 갔던 날이 많은 세월, 그시대 겨울 연탄과 나무를 난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집은 잘 살지 못해서 부지런한 어머니와 나에 의해서 근근히 난방을 이어 가고 있던 1969년 겨울 혹독하게도 추운 날씨와 많은 눈,,, 연탄을 구할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돈이 없음) 한심한 상황에서 동네에서 나름 잘 사는 정수근 선생님, 강대근 선생님 그리고 인규네(뼈 접골원),창규네(과수원집) 사모님과 아주머니들이 연탄공장에서 줄을 서는 수고를 덜어 주고, 동네에 몇 안되는 리어커를 빌려 100장, 100장, 100장을 고사리 같은 손과 노루같은 발에 검은 고무신을 싣고(눈 길에 정말 미끄러움) 하루에 300장을 나르면 하루해가 다갔다. 이힘들고 재미 있는 일에 동네 꼬마들이 동참해 주어서 너무도 고마운 기억이 있다..이 노동에 댓가는 1/10인 10장+10장+10장 = 30장을 집으로 얻어 올 수 있었다.. 나는 69~71년까지 약 3년을 연탄 배달 심부름을 해서 넉넉하지 않은 집안에 난방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공부는 뒷전 나무를 주우려 다니고, 고철을 줍고 해서 지독한 가난에 겨울을 이겨 내는 어머니를 돕던 기억,, 지금은 쓴 웃음으로 이글을 올릴 수 있지만 대부분의 친구들 조차 모르는 나의 9살~11살에 기억이다...
이런 것들이 나에게는 1970년 새마을 운동과 함께 잘살아 보자는 의지를 만들고 정말 어린 나이에 실천을... ,,, 정말 이때 배가 너무 고파서 지금에 남천초등학교 옆 독송봉(제천 시가지 내에는 북두칠성과 형상이 같은 7개의 봉우리가 있다... 지금은 많은 주택이 들어서 북두칠성의 연소봉, 요미봉과 같은 표지 비석이 있다, 아래 참조) 무 고개를 넘어 동현동 큰집에 들려 허기진 배를 채우기도 했던,, 참으로 눈물나는 기억이다..
친구들 나는 가을이면 이삭줍기도 많이 했네... 이 이야기는 담에 하기로 하고,,
이제 이런 이야기를 카스에 남기는 것은 더 이상 기억이 망각 되기 전에 글로 남기고 우리가 살아 온 가치를 재 조명해서 남은 삶에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참조1 연탄파동
1960년대 이후 두 차례의 큰 연탄파동이 있었다. 첫 번째 파동은 1966년 정부가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강력한 가격통제 정책을 펴면서 발생했다. 정부는 장당 15원이던 연탄 값을 8원으로 묶는 정책을 펴자, 연탄 값 인상을 요구하는 업자들이 생산량을 줄였고, 공급량이 부족해진 연탄 값은 3∼4배까지 오르게 되었다.
두 번째 파동은 1974년 오일쇼크 전후 공급량 부족으로 일어났다. 정부는 오일쇼크의 영향으로 기름 값이 오르기 시작하자 연탄 사용을 독려했는데, 시민들은 겨울철이 되기도 전에 연탄을 사 나르기 시작했다. 여름철에 이미 생산량이 바닥나기 시작해 장당 22원이던 연탄 가격이 30원으로 올랐고, 울릉도에서는 80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참조2 제천 칠성봉
『제천군지』에 의하면 “독송봉(獨松峯), 연소봉(燕召峯), 성봉(星峯), 요미봉(要美峯), 자미봉(紫美峯), 아후봉(衙後峯), 정봉산(丁峯山) 일곱 봉우리가 북두칠성(北頭七星) 모양을 이루고 있어 칠성봉이라고 한다. 일곱 개 독봉이 북두칠성 모양을 이룬 곳은 전국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니 가히 제천의 표상이라 할 만하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제천의 칠성봉은 규장각에 보관된 『제천현지도』[1872년경 제작]에도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현재 1봉 독송봉과 5봉 자미봉이 현대화로 인한 도시 개발로 표지석만 남아 있으며 나머지 5개 봉우리는 건재하다.
칠성봉의 일곱 봉우리는 북두칠성의 각 별에 대응시켜 각각 담당하는 역할도 다르다고 믿었다. 제1봉 독송봉은 북두칠성 제1성 탐랑성군으로 자손만덕(子孫萬德)을 담당하였다. 제2봉 연소봉은 북두칠성 제2성 거문성군으로 인간사의 모든 장애를 멀리 쫓아주는 일을 담당하였다. 제3봉 성봉은 북두칠성의 제3성 녹존성군으로 타고날 때 복과 교육을 담당하였다. 제4봉 요미봉은 북두칠성의 제4성 문곡성군으로 소원 성취와 나쁜 것을 새롭게 바꾸어 준다고 믿었다. 제5봉 자미봉은 북두칠성의 제5성 염정성군으로 백 가지 장애물을 소멸하는 일곱 별을 관장하는 중심을 담당하였다. 제6봉 아후봉은 북두칠성의 제6성 무곡성군으로 복과 덕을 풍족하게 하여 준다고 믿었다. 제7봉 정봉산은 북두칠성의 제7성 파군성군으로 건강과 수명을 다스려 준다고 믿었다.
제천의 독송봉은 천하의 명당이다.. 그러나 묘를 쓸수 없는 곳이다.. 그사유는 음택이 아닌 양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