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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경제학

南塘 2012. 8. 4. 21:15

[고졸의 경제학] [3·끝] 미혼의 연봉1억 은행원, '고졸' 이라고 밝히자

입력 : 2012.08.04 03:23

고졸에 대한 사회적 편견·차별이 '학력 인플레' 부추겨
회사 승진에 약점으로 작용… 결혼 시장서도 대졸에 밀려… 중매업체에 가입 못 하기도
대학 진학 기회비용에 사교육비까지 합치면 GDP 3.2%인 39조원 낭비

1991년 지방의 한 상고를 졸업한 서모(39)씨는 주위의 부러움을 사는 '성공한 고졸'이다. 졸업하자마자 한 대형은행에 들어가게 됐고, 열심히 일해 같이 입사한 대졸자들보다도 먼저 차장으로 승진했다. 현재 연봉은 1억원을 조금 넘는다.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서씨에게 요즘 고민이 생겼다. 야간대학 진학 문제다. 그는 "고졸 출신 중에도 점포장급이나 부행장까지 올라가는 사람이 없진 않지만, 비슷한 능력이라고 할 때 경영진 입장에서 대졸자와 고졸자 중 누구를 승진시킬지는 당연한 것 아니냐"고 했다.

결혼도 서씨가 대학진학을 고민하는 이유 중 하나다. 아직 미혼인 그는 "거래처 사장 중에 나를 좋게 봐줘서 전직 장관 따님이랑 중매를 서겠다는 분도 있었는데 '고졸 출신'이라고 했더니 중매 얘기가 쏙 들어가더라"며 씁쓸해했다. "대학을 다녀서 전혀 배우는 게 없더라도 졸업장은 있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 그룹 홍보실에서는 고졸 채용 확대에 맞춰 보도자료를 준비했다가 홍역을 치렀다. 때마침 임원승진 인사가 있어 고졸 출신 임원 승진자를 따로 소개하는 자료를 만들었는데, 본인들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고졸이 무슨 자랑이라고 이름을 내느냐" "입사 후 대학 졸업장을 딴 내가 왜 고졸이냐" "내가 고졸인 건 우리 가족들도 모른다"는 등의 거센 항의가 쏟아졌다. 결국 보도자료 배포가 취소됐다.

고졸은 좋은 배우자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라

본지가 직업능력개발원과 함께 대학 졸업장의 경제적 가치를 분석한 결과 일부 상위권대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고졸에 비해 손해인 것으로 드러났듯, 갈수록 부담되는 학비와 청년 취업난으로 인해 대학 진학의 경제적 장점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최근 들어 은행권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고졸 채용이 확대되는 등 변화의 조짐도 있지만, 고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곳곳에서 여전히 무너지지 않고 있는 벽이다.

결혼 시장에서의 차별이 대표적이다. 대표적 결혼정보업체인 듀오는 고졸 출신 남성은 아예 가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회원가입 자격 요건으로 '남자는 전문대졸 이상, 여자는 고졸 이상'을 명시하고 있다.

고졸자들을 회원으로 받는 결혼정보업체들은 대졸자에 비해 재산과 직업, 외모 등에서 까다로운 심사를 하고 있다. 한 결혼정보업체 관계자는 "대학 진학률이 8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고졸 출신을 배우자로 선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고졸 출신이 기업에서 실력으로 인정받을 수는 있어도 체면이 중요한 우리나라의 결혼 문화에서 환영받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은 숫자로도 드러난다. 서울시가 발표한 자료 따르면 2010년 서울의 35~49세 미혼 남성 24만2590명 중 52.4%인 12만7040명이 고졸 출신이다. 40~49세 고졸 이하 남성 중 미혼자 비율은 18.7%로 대졸 이상 미혼자 비율 9.8%보다 2배 이상 높았다. 대학원 졸업 학력 이상의 남성 미혼자 비율인 5.3%에 비해선 3배나 높다.

학력 차별과 편견 때문에 GDP 1% 까먹어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대졸자와 고졸자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이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대학 진학을 선택하게 되는 이유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 때문이다. 학력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학력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학력 인플레이션은 세계 최고의 대학 진학률로 이어져 막대한 개인적·국가적 낭비를 초래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한국 교육에 대해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과잉학력자 비율은 42%에 이르며, 대학진학으로 인한 기회비용과 사교육비 등을 합치면 국내총생산(GDP)의 3.2%인 39조원이 낭비되고 있다. 이 연구소는 대졸 과잉학력자가 대학 진학 대신 취업해 생산활동을 할 경우 GDP가 1%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분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학력 인플레이션이 직업에 대한 기대수준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청년 실업을 부추긴다"면서 "경제활동의 주력계층인 청년층의 취업준비 기간이 길어지고 구직 포기자가 양산되면서 경제 전체의 성장잠재력을 훼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영범 직업능력개발원 원장은 "대졸자 취업률이 40%밖에 안 되는 상황을 벗어나려면 기존의 대졸 중심 인재육성 정책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며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성공신화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개인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노동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