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경영

[동서남북] 100만불짜리 아이들

南塘 2010. 1. 6. 22:43

[동서남북] 100만불짜리 아이들

 강경희 경제부 차장대우

 

크리스마스 무렵, 대한항공뉴욕샌프란시스코에서 정기편 외에 총 5편의 전세기를 더 띄웠다. 겨울 성수기인 데다, 미국에서 유학 또는 연수 중인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아 일제히 귀국하는 바람에 비행기가 초만원이었기 때문이다. 기내에 어른 손님보다 10대·20대들이 더 북적대는 풍경은, 국제수지 중에 여행·유학수지 적자가 가장 심각한 한국으로서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부모는 지하철 타도 아이들은 비행기 타고 유학·연수 떠나는 정도의 고비용 케이스는 아니라 해도,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일제히 지갑을 열었다. 학교가 문 닫는 순간, 늘어난 시간만큼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봐줄 사설 학원, 또는 각종 캠프를 찾아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막대한 집값에, 높은 사교육비로 한국 부모들 계좌에 빨간 불이 켜진 지는 오래다. OECD 국가들 가운데 가계 저축률은 바닥이고, 자녀에게 들어가는 직간접 비용은 가계 소비 지출의 56%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낳아 고등학교까지 보내는 비용은 대략 1억7000만원, 대학 4년까지는 총 2억3200만원(2006년 기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이 키우는 비용이 엄청나다"고 비명 지르며 아이 낳기를 꺼리는 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농무부 계산에 따르면, 2008년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 한 명을 고등학교 마치는 17세까지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22만1190달러(약 2억5000만원). 비싼 대학 등록금은 포함하지도 않았다.

미국의 저명한 인구 문제 전문가 필립 롱맨(Longman)은 한 걸음 더 나가 현대의 아이들을 아예 '100만불짜리 아이들'이라고 표현했다. 세계적인 저출산의 재앙을 경고한 저서 '텅 빈 요람(The Empty Cradle)'에서 롱맨은 미 농무부가 계산한 자녀 양육의 직접비 말고도, 엄마들이 자녀 키우느라 일을 그만두거나 시간제 일을 하는 바람에 생긴 소득의 감소, 즉 가족의 기회비용까지 몽땅 계산해 아이 한 명당 17세까지의 양육비가 100만달러 넘는다고 결론내렸다.

더 가난하던 시절에도 자녀를 잘 키운 기성세대들 눈에, '돈 없어 아이 못 낳는다'는 젊은층의 하소연이 이기적인 투정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하지만 롱맨은 "사회적으로 높아진 기대 때문에 자녀 교육에 쏟아붓는 돈의 하한선도 높아져 젊은 부모들의 부담이 더 커지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부자를 뜻하는 말이 '백만장자'다. 역설적으로 현대의 부모들은 '100만불짜리 아이'를 낳고 키우는 만큼 가난해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한 생명을 낳고 키우는 무한의 기쁨을, 계산기 두들긴 비용과 같은 저울에 올려 놓고 따질 순 없지만, 그래도 21세기 전 세계가 안은 가장 큰 숙제의 하나가 저출산·고령화요, 저출산의 중요한 원인은 '고비용 양육 구조'에도 있다는 현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각국 정부는 고비용 양육 구조를 개선해 아이 많이 태어나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발벗고 뛴다. 거기에 미래의 국력도, 경제력도 달려있기 때문이다.

불과 8년 후인 2018년, 한국은 '더 늙은 나라'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4% 이상)로 진입한다. 모두가 100만불짜리 아이들을 생각하며 고개를 젓는데 뾰족한 묘책도 없이 고령사회는 벌써 가시권에 들어 왔다. 위기의식도, 해법도 이전과는 차원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