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향상] 포스트잇 한 장에 적힌 아이디어가 혁신의 출발 - 구성원에
[생산성 향상] 포스트잇 한 장에 적힌 아이디어가 혁신의 출발 - 구성원에 의한 혁신 | |
지식 경제 시대에 기업의 가장 소중한 자원은 바로 사람이다. 즉 구성원의 지식, 지혜, 아이디어를 제대로 활용하는 기업이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구성원이 마음껏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와 문화를 만들고 있다. 산업화 시대에 도입했던 케케묵은 사내 제안제도에 의존해왔던 한국 기업들도 이 변화에 동참하고 있다. 구성원의 아이디어에 의해 혁신을 일군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구성원에 의한 생산성 향상의 중요성과 효과를 짚어 보자.
웅진코웨이는 2008년 4월 ‘상상오션'이란 제안제도를 만들었다. 상상오션이라는 이미지와 연관 지어, 좋은 제안을 하는 구성원에게 ‘새우'를 준다는 독특한 발상을 했다. 새우 한 마리는 현금 100원에 해당하며 새우 백 마리부터는 현금으로 받을 수 있다. 새우 1만 마리가 모이면 돌고래 한 마리(100만 원 상당)와 교환할 수 있다. 열 단계의 등급제도도 도입했다. 즉 아이디어를 적게 낸 구성원은 ‘초보 선원'이 되고, 아이디어를 가장 많이 낸 구성원은 ‘선장' 직위에 오를 수 있다. 돌고래가 세 마리 이상이면 ‘항해사'의 자격으로 미주 및 유럽 연수 기회를 갖고, ‘선장' 단계에 올라가면 특진 기회까지 주어진다. 발랄하고 톡톡 튀는 제안제도를 만들자 구성원의 반응도 달라졌다. 2007년에는 구성원의 월평균 제안 수가 1.36건에 불과했지만, 상상오션 도입 후인 2008년 7월에는 8.61건으로 껑충 뛰었다. PC를 사용하는 사무 구성원뿐 아니라 방문 서비스 구성원(코디)들도 현장에서 PDA를 활용해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일진다이아몬드는 2000년대 들어 세계 합성 다이아몬드 시장을 장악한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로 만성 적자에 시달렸다. 2007년 1월 구원투수로 영입된 두산중공업 출신 이윤영 사장은 TOP(Total Operational Performance)라는 경영 혁신제도를 도입했다. TOP는 단기간에 기업의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현장 구성원의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실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일진다이아몬드의 제안제도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은 철저한 ‘과거불문' 원칙이다. “몇 년간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보니, 구성원의 사기가 많이 저하돼 있었습니다. 왜 제안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느냐고 물어 보면, ‘진작 그렇게 했어야지. 이제까지 안 하고 뭐하다 지금 얘기하는 건가'라며 책임 소재를 추궁할 것 같아 망설인다는 구성원이 많았어요. 기존 낭비 요소에 대한 잘잘못을 구성원에게 추궁하지 말아야 구성원 역시 자신이 그간 잘못했던 점을 개선 아이디어로 적극 제시할 수 있습니다.” 철저한 과거불문 원칙을 통해 발굴한 가장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다이아몬드 가루 재활용. 흑연에 고온·고압을 가해 합성 다이아몬드 결정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흑연 가루와 다이아몬드 가루가 찌꺼기로 남는다. 이때 경사진 슬로프에 찌꺼기를 놓고 물을 흘리면 가벼운 흑연 가루는 흘러 내려가고, 무거운 다이아몬드 가루만 남아 이를 재사용한다. 하지만 아주 미세하고 가벼운 다이아몬드 가루는 흑연 가루와 함께 물에 휩쓸려 버려지는 것이 문제였다. 지난 20여 년간 이런 공정을 고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 다이아몬드 가루를 재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다. 그런데 한 생산팀 구성원이 버려지는 다이아몬드 가루를 회수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방법은 너무도 간단했다. 찌꺼기를 폐수로 흘려 보내기 전, 체에 한 번 더 걸러 버려질 뻔한 다이아몬드 가루를 얻어내는 것이다. 일진은 이 방법을 통해 한 해 3억 원 어치의 다이아몬드 가루를 회수했다.
구성원이 제안제도에 거부감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제안양식의 복잡성 때문이다. 아이디어는 간단한데 이를 제안하려면 왜 그런 현상이 발생했는지, 구체적인 문제점과 개선 방안은 무엇인지 장황하게 적어내야 한다. 어렵게 짜낸 아이디어가 의사결정권자에게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본인이 자신의 아이디어가 채택되었는지를 확인할 때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활발한 제안이 이뤄지기 어렵다. LG전자 창원 공장의 에어컨 사업부에서는 이 같은 제안제도의 복잡성을 없애기 위해 2007년부터 작업 현장에 ‘낭비 제거 제안 현황판'을 비치하고 포스트잇을 활용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기술하도록 했다. 제안 채택 과정도 간단하다. 해당 작업 감독자가 포스트잇 아이디어를 보면 그 즉시 채택 여부를 판단, 채택된 아이디어에는 도장을 찍는다. 단순화한 제안제도로 현실화된 대표적 아이디어가 바로 부품 박스를 실어 나르는 로봇 자동차 AGV(Auto Guided Vehicle)다. AGV는 제품 제조에 필요한 부품을 일정 속도로 안전하게 각 생산 라인으로 운송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직선 주행뿐 아니라 곡선 노선에서도 자유자재로 주행이 가능하다. LG전자는 700~800kg에 달하는 큰 부품을 운송하는 AGV, 제자리에서 180도 회전하는 AGV, 부품 선적 과 하역이 가능한 AGV까지 다양한 용도에 따라 100여 대의 AGV를 자체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유한킴벌리는 근무 체제 변경으로 발생한 구성원의 여가 시간을 학습 및 제안제도와 연결시켜 좋은 성과를 낸 대표적 기업이다. 유한킴벌리는 1998년 IMF 외환위기 속에서 국내 기업 중 거의 최초로 4조 2교대 근무제를 채택, 감원 없는 고용 유지를 선택했다. 외환위기 전에는 하루 여덟 시간씩 세 조가 일하는 체제였지만, 이를 열두 시간씩 일하는 네 조로 만들어 두 조는 일하고 두 조는 쉬는 식으로 바꿨다. 이는 한국식 일자리 나누기 제도의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10년 넘게 이 제도를 유지한 유한킴벌리는 구성원의 여가 시간이 늘어나는 것에 착안, ‘평생학습 시스템'이라는 이름의 제안 및 학습제도 연계 체제를 도입했다. 생산·기능직 구성원을 위한 4조 2교대 근무는 주간 4일 근무(12시간)->휴무 4일->야간 4일 근무(12시간)->휴무 3일 및 교육 1일의 순서로 이뤄진다. 즉 16일에 한 번 돌아오는 교육 시간 때 구성원이 학습 기회를 활용해 당면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스스로 발굴하도록 기회를 부여한 것이다. 특히 생산·기능직 구성원의 호응이 높았다. 자신의 생산 과정을 면밀히 이해하고,업무 개선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충분한 휴식과 학습 시간을 부여하니 제안제도가 활성화되고, 이것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군포 공장의 경우 1998년에는 구성원 한 사람당 제안 건수가 4.3건에 불과했지만, 2008년에는 11.2건으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유아용 기저귀의 생산성도 시간당 1998년 25.4개에서 2008년 46.8개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1998년 0.49%에 달했던 유한킴벌리의 재해율은 2008년 0.06%로 하락했다. 국내 제조업 평균 0.9%의 1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제안제도를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제도 자체도 중요하지만, 구성원 입장에서는 사내 ‘분위기'가 매우 크게 작용한다. 엄숙하고 딱딱해 ‘누구나 말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입 밖으로 내기 어렵다. 앞서 살펴본 사례들의 공통점은, 가급적 모든 구성원이 부담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제안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점이다. 외국 기업들의 사례에서도 이 같은 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미국 컨설팅 회사 갭인터내셔널은 <포천> 500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을 비롯한 각계 지도자들 100여 명과 함께 한 리더십 세미나에서 그 날의 주제에 맞는 노래와 춤 공연을 연다. 우리나라의 싸이월드와 흡사한 미국의 페이스북의 경우, 구성원 중 누구라도 마음이 내키면 “여러분, 우리 또 헥카톤(Heckathon, 철야로 진행되는 페이스북의 사내 제안제도) 합시다”라고 말하면 하나둘씩 구성원들이 큰 방에 모이고 피자, 콜라와 함께 회의가 시작된다. 제안제도를 겉치레 ‘제도'에 그치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모든 구성원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성공적인 제안제도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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