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군대에서 현장경험 쌓는 로마의 예비 지도자
[위대한 기업, 로마] 10년간 군대에서 현장경험 쌓는 로마의 예비 지도자 - 핵심인재 육성 | |
난폭한 네로 황제, 원형경기장에서 벌어지는 검투사들의 잔혹한 싸움…. 몇몇 영화를 보면 결코 긍정적이라 볼 수 없는 로마의 이미지를 접하게 된다. 그러나 로마가 천년제국의 위엄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실력과 노력이 뒷받침된 치밀한 경영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기업이 배워야 할 로마식 경영법. 이번 연재에서는 그중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를 꼽아 기업경영의 영양분으로 삼아 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는 기업의 핵심 프로세스인 인재 발굴·양성 시스템에 대해 알아 보자. 탁월한 인재들을 보유하고 있었던 로마의 인재 양성 노하우는 무엇일까? 단계적인 능력 검증이 지도층 진입의 전제조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도층의 역량은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유능한 지도층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재를 발굴해서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을 기회를 주는 체계적인 인재 양성 시스템에서 만들어진다. 이러한 시스템의 뒷받침 없이 행운에만 의존해 리더십을 바라는 공동체가 장기간 번영할 수는 없다. 유능한 리더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시스템은 조직의 가장 핵심적인 프로세스이고, 로마는 차세대 리더 양성에서 탁월한 프로세스를 보유하고 있었다. 천년제국 로마는 학교에서 배우는 고상한 이론보다는 현장에서 쌓는 경험을 중시했고, 왕정·공화정·제정의 구별없이 체계적으로 인재를 양성하는 시스템이 있었다. 명문가 출신일지라도 차근차근 단계를 거쳐 가면서 자신의 역량을 입증하지 않으면 공동체의 지도자가 될 수 없었다. 귀족 계급의 자제는 군복무로 시작해 명예로운 공직 경력으로 여겨지던 회계감사관·법무관·집정관의 세 단계를 거치면서 현장경험을 쌓고 능력을 인정받았다. 각 단계에서 조직생활과 리더십의 의미를 체득하고 지도자로서의 기본 자질을 검증 받은 것이다. 로마 특유의 단계별 인재 양성 시스템에 힘입어 로마는 현실경험이 풍부한 우수한 지도자가 끊임없이 충원될 수 있었다. 현실과 유리된 그럴듯한 관념론과 이상론에 빠진 선동가가 지도자가 되어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지도자에게 현장경험을 요구하는 로마의 전통에 따라 명문가 자제의 사회 경력은 먼저 군대에서 시작됐다. 로마에서는 만 17세의 성인이 된 명문가 자제는 군대에 입대해 보통 10년, 최소한 3~4년의 복무기간을 반드시 거치는 관례가 있었다. 귀족집안 출신의 청년이 군대에 입대하면 고위장교급인 대대장에 기용됐는데, 대대장은 여섯 명의 백인대장을 부하로 두고 약 600명의 병사를 지휘했다. 원로원 계급의 자제는 열 명의 대대장 중에서도 수석대대장인 1대대장에 취임했다. 수석대대장은 유사시 군단장을 대신해 병력을 지휘하는 막중한 자리였다. 아무리 명문가 출신이라도 경험 없는 20대 초반의 풋내기가 백전노장인 동료와 부하들을 지휘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미래의 예비 지도자인 수석대대장은 자신의 능력을 분명히 보여 주지 않고서는 부하들로부터 신망을 얻을 수 없었고, 여기서 리더십을 인정받는 것이 공직 생활의 출발점이었다. 군복무를 마치면 공직 경력의 첫 단계인 회계감사관에 출마한다. 회계감사관 임무를 통해 공동체를 꾸려 나가는 일에 있어 돈의 의미를 이해하고 효율적 재정 운영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공직 경력의 두 번째 단계는 법무관이었다. 법무관 업무를 수행하면서 공정한 법 집행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법률을 다루는 능력도 키운다. 법무관을 거쳐야만 비로소 군단장을 맡을 자격을 가질 수 있었고, 속주 총독으로 파견되어 행정 능력을 인정받아야 로마 최고의 관직인 집정관에 출마할 수 있었다. 집정관은 매년 두 명이 선출되며, 40세가 넘어야 출마할 수 있는 경력이 갖춰진다.
로마인이 지도자 양성 과정에서 적용한 현장경험 중시, 단계별 인재 육성은 현대의 기업경영에도 적용되고 있는 원칙이다. 경영진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는 통찰력을 바탕으로 기업과 조직의 생존을 위한 합리적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능한 경영진의 확충 없이 기업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GE사의 전 CEO로서 세계 최고의 경영자라는 평판을 얻은 잭 웰치는 후임으로 외부의 거물급 경영자를 영입하지 않고, GE에서만 20년 가까운 경력을 쌓은 45세의 제프리 이멜트를 CEO로 임명했다. 이는 GE의 장기적이고 치밀한 경영자 양성 시스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GE는 1970년대 초부터 단계적 리더 양성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적용했다. 리더의 성장과정을 ‘초급관리자-중간관리자-영역전담관리자-사업총괄관리자-그룹관리자-기업관리자'의 여섯 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를 차근차근 밟으면서 CEO로 성장하는 경로를 설계한 것이다. GE가 ‘CEO 사관학교'로 불릴 정도로 CEO급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는 배경에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뒷받침되고 있었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듯이 조직이란 지도자를 중심으로 조직원들이 동심원을 그리면서 돌아가는 소우주다. 우수한 조직원으로 구성된 조직이라도 저급한 인간이 지도자가 되면 금세 저급한 조직으로 변모한다. 반면 탁월한 지도자는 수준이 낮은 조직원의 능력을 끌어올려 조직 전체를 활성화하는 힘과 통찰력이 있다. 로마의 성공적인 국가경영에는 효과적인 지도자 양성 시스템이 한몫했다. 미래의 지도자 그룹은 성인이 되고 나서 군대의 장교, 말단 행정직, 군단 지휘관, 지방 행정책임자라는 단계별 과정을 거쳐 자질을 검증 받고 경력을 쌓았다. 이는 로마인들이 지도자에게 필요한 자질을 관념적 이론이 아니라 현실적 체험에 기반한 통솔력과 추진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구조에서 역량이 부족한 사람이 갑자기 찾아 온 행운에 힘입어 지도자로 성장하긴 어렵다. 조직의 리더는 남의 행동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떠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사람들을 운용해 구체적인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 리더십에 필요한 통찰력은 인간사회의 자질구레한 일과 다양한 측면을 경험함으로써 길러진다. 실제로 조직생활 경험도 없이 공부만 많이 한 사람이 조직 운영에 대해 하는 이야기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조직을 운영해보지 않고 혼자서 일했던 사람이 급작스럽게 리더가 됐을 때는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체계적인 지도자 육성 과정이 없는 조직은 리더가 교체될 때마다 도박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부담은 조직 전체가 고스란히 지게 된다. 기업은 곧 사람이다. 좋은 자질을 가진 사람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길러지고, 단계별로 검증된 인적자원이 직급별로 풍부하게 있는 조직은 번영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원리를 바로 천년제국 로마의 인재 양성 시스템이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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