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리더는 그저 비싼 브랜드가 아니라, 정말 품질이 좋은 옷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갖추어 입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요컨대 비즈니스 리더의 옷차림은 개성의 표현이기 이전에 비즈니스를 성장시키기 위한 철저한 전략인 것이다. 많은 외국 잡지에 등장하는 멋진 CEO의 모습은 본원적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교육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우리들은 특정한 방식이나 기법 혹은 겉모습을 단순하게 표현하기 위해 ‘스타일'이라는 말을 범용하고, 그 단어 앞에 종종 좋은, 나쁜, 멋진 등의 수식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영어사전에서 스타일(Style)이란 단어를 찾아보면 그 자체로 우아한(Elegant) 삶이나 한 사람의 전체적인 특성을 말하는 캐릭터(Character), 심지어는 모든 비즈니스맨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는 마음 자세(Attitude)까지도 표현하는 중요한 개념이 된다.
다시 말해 우리들이 “겉모습이 뭐가 중요해, 사람이 진국이면 그만이지.”라는 식의 기계적인 이분법적 정서에 길들여져 있다면, 서양 문화에서는 사람(이나 제품)의 외면과 내면은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결국 하나이며, 그래서 사람의 내면과 생각, 철학이 자연스럽게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스타일'이라고 간주한다.

디자인과 스타일은 모든 것에 앞서는 ‘영혼'이다
IT와 디자인에서 세계적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과 스타일은 조금만 신경 쓰면 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에 앞서는 ‘영혼'이라고 표현했다. 탁월한 안목을 가진 경영자이자, 무서운 집념을 가진 크리에이터인 동시에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엔터테이너의 자질을 갖춘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제품을 소개하는 프레젠테이션에서 항상 색이 바랜 청바지에 검은색 터틀넥 니트, 그리고 가벼운 스니커즈를 매치한다.
이미 스티브 잡스만의 아이콘이 된 이 유명한 룩이 애플이 지향하는 가치를 상징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규제도 없는 자유로운 캐주얼만이 창의적인 문화를 담보할 것이라는 결론으로 규정짓기엔 무리가 있다.
전통적인 기준을 가진 대기업의 CEO와는 좀 다른 이 옷차림은 스티브 잡스와 그의 분신인 애플이 기성 기업의 전통적인 특성, 이를테면 과거 데이터만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위험을 넘어서는 새로운 도전보다는 오직 검증된 경험만으로 대처하려는 기업 문화에 그다지 개의치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결국 그의 옷차림은 자신을 포함해서 사업에 관련된 모든 디테일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 스티브 잡스의 놀랍고 치밀한 전략인 것이다.
단순한 미국식 캐주얼의 일부일 뿐이었던 청바지와 터틀넥은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남다른 생각과 혁신적인 도전을 상징하는 문화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이는 우리들에게 비즈니스 리더의 옷차림이 의미하는 가치와 상징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

첨단기술 못지않게 중요한 기업 이미지
역사적으로 애플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 온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는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얼굴의 반을 덮는 듯한 수수한 검은 플라스틱 안경과 차분한 옥스포드 셔츠가 그의 대표적 모습이었다. 탁월했던 비즈니스 성과에 비해 옷차림에 대한 관심과 센스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애플의 창조적 혁신 마인드가 빛을 발하기 이전인 1990년대까지도 사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시장을 거의 독주하던 시대였다. 계속 높은 버전이 출시되는 윈도우에 대한 관심과 엄청난 시가총액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빌 게이츠는 바빴을지도 모른다.
이런 빌 게이츠가 1994년 결혼 이후 품위 있는 클래식 정장이나 따뜻한 느낌을 주는 캐시미어 니트를 입는 등 CEO로서의 이미지 변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시대가 아무리 흘러도 탁월한 기술력을 기본으로 하는 IT 기업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기본적인 속성은 유지되겠지만, 독점과 관련된 소송을 겪으면서 그는 사회 속에서 기능하는 기업의 이미지도 첨단기술 못지않게 중요함을 배우게 되었다.
옷차림의 변화뿐만 아니라 빌 게이츠는 에이즈를 치료하는 백신 개발이나, 제 3세계 기아 문제를 위한 과감한 기부를 통해 기업 경영의 전략이 상품과 경쟁만을 통한 것이 아님을 몸소 보여 주고 있다.
CEO가 자신의 옷차림을 통해 직설적으로 기업의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서 이슈가 되는 사례도 있다. e베이의 놀라운 성장을 이끌었던 비즈니스계의 여제(女帝)이자 전 CEO 맥 휘트먼의 경우 e베이 로고가 새겨진 카키색 셔츠를 자연스럽게 입음으로써 CEO가 엄숙하고 권위적이기보다는 친근할 수도 있음을 보여 주었다.
한편 쓰러져 가던 코끼리라는 별명의 IBM을 재생시킨 루 거스너 전 회장은 CEO 취임 직후부터 블루 셔츠를 즐겨 입으면서 화이트컬러로 대표되는 관료조직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미국 최대이자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GE를 최강의 기업으로 발돋움시킨 잭 웰치 전 회장은 재임시 출중한 경영능력을 보여 준 동시에 우아하고 품위 있는 클래식 복식으로도 충분히 이슈를 만들어 낸 바 있다.
비즈니스 리더의 옷차림은 전략이다
비록 세계 경제의 흐름이 예측되지 않는 이 시대, 한 기업의 운명을 책임지는 CEO가 고민하고 판단해야 할 사항은 사실 너무나 많다. 경영에 관련된 중요한 일들이 공기처럼 떠다니는 순간, 그의 모든 직관이 회사의 전략을 가늠할 각종 지표들과 정보에 집중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특히 경제적 이슈들이 파도를 치는 시절에는 각 구성원들의 문화적 숙성을 지향하는 가치, 이를테면 옷차림이나 사회적 책임과 같은 관심사들은 생각의 변두리로 옮겨지는 수도 많다.
하지만 CEO를 비롯한 경영자들은 사사로운 ‘개인'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기본적으로 경영자에게 경영의 긍정적 환경을 개척하고 위기를 주동적으로 돌파하는 능력을 기대하지만, 한 조직이 어떤 가치와 문화로 형성되었는지를 확인하는 확실한 지침도 결국 경영자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그들은 한 기업의 수익과 성장을 책임지는(경영적으로는 ‘기구'이자) ‘공인'이지만, 나아가 회사의 현재 문화와 미래 비전을 종합적으로 상징하는 강력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영자가 입는 옷은 매일 아침 세탁 여부에 따라 임의로 선택되는 일상의 사소한 장치가 아니다.
개인의 이미지를 넘어 회사를 대표하며 당대의 흐름과 세계의 파트너를 만나는 비즈니스 리더들은 그저 비싼 브랜드가 아니라, 정말 품질이 좋은 옷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갖추어 입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상대에 대한 예의를 내포하는 정장이라면 그것을 입는 몇 가지 법칙을 원칙적으로 준수하고, 나와 상대의 편안함을 목적으로 하는 비즈니스 캐주얼이라면 굳이 어려운 공식보다는 유연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도록 자신만의 취향을 즐기는 것이다.
요컨대 비즈니스 리더들의 옷차림은 개성의 표현이기 이전에 비즈니스를 성장시키기 위한 철저한 전략이다. 많은 외국 잡지에 등장하는 멋진 CEO의 모습은 본원적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교육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먹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먹되, 입는 것은 남을 위해서 입어야 한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 귓가에 메아리친다.
- 남훈 / 제일모직 란스미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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