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경영

아빠가 지금 놀아줘야 아이도 커서 제 바쁜 시간을 내어 주겠죠?

南塘 2008. 11. 18. 17:38

[좋은 부모 2편] 아빠가 지금 놀아줘야 아이도 커서 제 바쁜 시간을 내어 주겠죠? / 바쁜 아빠, 아이와 친구되기 
  

아이는 부모가 만들어 가고 키워 가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커 가는 존재입니다. 아이가 코스를 벗어나지 않고 잘 달리고 있다면 그저 응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와 부모와의 공감대, 특히 아빠와의 공감대가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아이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둘만이 알고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저와 아들은 둘만의 ‘비밀암호'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어떻게 보면 참 유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어릴 때는 같이 유치하게 놀아 주어야 합니다. 아빠가 무게만 잡고 있으면 아빠와 아이의 관계는 겉돌기 쉬운 관계가 될지도 모릅니다.


아빠와의 공감대, 아이를 자라게 한다

<가시고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백혈병에 걸린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그린 책입니다. 아들이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 책을 읽고 난 후 저에게 와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아빠, <가시고기> 읽어 봤어?
-응.
-그 책 되게 감동적이더라.
-응, 그렇지.
-근데 아빠. 난 그 책 읽으면서 계속 아빠 생각나더라.
-그래?

가시고기 아빠의 헌신적인 사랑을 보면서 아들은 제 아빠를 연상했을 것이고, 자신의 아빠와 소설 속의 아빠를 비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 또한 소설 속의 아들같이 무한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하는 아이의 표정은 저에 대한 감사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의 아들은 민족사관고등학교를 거쳐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아들을 저렇게 잘 키웠느냐고 묻습니다. 그렇게 물어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아이의 학벌에 관심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는 키운 적이 없습니다. 아이는 스스로 커 나갑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아이는 부모가 만들어 가고 키워 가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커 가는 존재라고요. 물론 아이가 달리면서 코스를 벗어날 때는 다시 코스로 돌아오도록 해야겠지요. 하지만 코스를 잘 달리고 있는 아이는 그저 응원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와 부모와의 공감대, 특히 아빠와의 공감대가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아빠'를 느끼게 하자

‘엄마와 자식의 관계'와 ‘아빠와 자식의 관계'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이미 열 달동안 심장박동을 맞춘 상태입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어미는 자식을 알고 자식은 어미를 압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다릅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 ‘보는' 아버지는 타인일 뿐입니다.

그래서 아빠가 아이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엄마보다 두 배, 세 배, 아니 열 배의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아이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존재'를 인식시켜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분유를 먹인다든지, 잠을 재운다든지, 기저귀를 갈아 준다든지 하는 것들이 누적되어야만이 아이는 아버지를 자기편으로 인식합니다. 그런 토대 위에서 아이는 아버지를 제대로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아이가 어릴 때 저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는 대신 항상 안고 다녔습니다. 제 잠바에 아이를 안고 지퍼를 올리면 아이는 제 옷 안으로 쏙 들어왔습니다. 제가 그렇게 한 이유는 아이가 저의 심장소리를 느끼게 하기 위함입니다. 뱃속에서는 엄마와 심장소리를 맞추었지만 이제 태어났으니 아빠하고 심장소리를 맞추어 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아이를 안은 제 모습이 우스웠던지 아내는 우리 부자를 보고 캥거루 같다고 놀리기도 하였습니다.

 


시간이 부족할수록 아이를 배려하자

<친구 같은 아빠 되기>란 책을 썼습니다. 인터넷서점에 들어가서 후기를 읽어 보았더니 “나도 저자같이 경제력이 확보되면 그렇게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금의 내 형편으로는 무리다”는 글이 있었습니다.

친구 같은 아빠가 되기 위한 가장 큰 무기는 아이를 배려하는 마음이지, 경제력이 아닙니다. 사실은 저도 처음에는 보증금 50만 원에 월세 7만 원짜리인 방 한 칸을 빌려 신혼살림을 시작하였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20년째 다니고 있는 직장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일찍 출근해야 하는 증권회사입니다. 당연히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전 시간이 부족하다고 아이에 대한 배려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은 아이와 통화를 하였습니다.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가 그러더군요. 자기는 아빠가 두 명이라고요. 무슨 말이냐고 물어 보았더니 한 사람은 지금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전화기 안에 있답니다. 어린아이다운 발상이지요.

회사에 행사가 있으면 아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일요일 특근을 할 때도 사무실에 아이를 데리고 간 적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빠가 어떻게 하면 아이와 많은 시간을 같이할 수 있을까 꾀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시간을 같이하지 못하면, 같이 있는 짧은 시간이라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아이와 시간을 보낼까를 고민하는 것이 더 좋겠지요.

아이가 어릴 때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빠가 가는 곳에는 선돌이가 따라가고 선돌이가 가는 곳에는 아빠가 따라가니, 아빠하고 나하고는 바늘과 실 같은 사이네.”라고 말입니다.

 


아이와 둘만 아는 비밀을 만들자

아이와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둘만이 알고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저와 아들은 ‘비밀암호'를 만들었지요. 그래서 자주 그 비밀암호를 써먹었습니다.

‘타치타치타타치'라고 하는 것은 아들과 제가 만든 것입니다. 처음에는 악수하듯 서로 손바닥을 치면서 ‘타'라고 말하고 그 다음은 손등을 서로 치면서 ‘치'라고 말합니다. 두 번을 반복한 다음 ‘타타치'는 악수하듯 손바닥으로 서로 치면서 소리를 높입니다. 비슷한 것으로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것들은 어떻게 보면 참 유치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어릴 때는 같이 유치하게 놀아 주어야 합니다. 아빠가 무게만 잡고 ‘으흠~' 하고 기침만 한다면 아빠와 아이와의 관계는 서로 겉돌기 쉬운 관계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더 큰 다음에는 아이의 일기장에 글을 써 주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일기를 읽고 제 생각을 적으면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읽곤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아빠와 아이의 비밀일기장이 된 것이지요. 아이가 좀 더 자라서는 아이의 미니홈피에 가끔씩 글을 남겼습니다.

이렇게 서로의 공감대를 넓혀 나가는 노력은 친구 같은 아빠가 되는 좋은 노하우가 아닐까 합니다. 친구 같은 아빠가 되면 아들은 자연스럽게 친구 같은 아들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가끔 아들과 술을 같이 마십니다. 그럴 때 아들은 저에게 가장 좋은 술친구이기도 합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면서까지 아이와 놀아 줘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짧은 지면에 ‘친구 같은 아빠 되기'의 노하우를 다 채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 있습니다.

먼 훗날 아빠가 할아버지가 되고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바쁜 아빠가 그 바쁜 시간을 쪼개어 자신에게 주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아이는, 역시 제 바쁜 시간을 쪼개어 제 자식을 데리고 나이 든 아빠를 보러 올 겁니다.

하지만 아빠가 바빠서 아이와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면, 그 아이 역시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오지 않겠지요. 아이는 그렇게 아빠를 닮아 가는 것이니까요.


- 김대중 / <친구 같은 아빠 되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