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경영

경제에 숨어 있는 과학

南塘 2008. 11. 15. 11:21

[흥미로운 과학, 호기심을 채우자 4편] 경제에 숨어 있는 과학 / 주가 변동은 담배연기처럼, 폭등과 폭락은 호르몬 탓! 
  

미국발 금융위기 때문에 전 세계가 휘청거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가와 환율이 요동치고 있다. 그런데 1960년대에는 주가의 변동은 담배연기의 운동 법칙을 따른다는 견해가 제시되었고, 최근에는 주가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 호르몬일지 모른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왜 경제활동을 설명하는 데 과학적 연구가 필요한 것일까? 파생상품 등 새로운 금융상품을 개발하는 데 기여해 온 금융공학과 투자, 마케팅, 협상 등 사람의 다양한 행동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신경경제학에는 유용한 과학의 원리가 숨어 있다. 지금의 금융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지혜도 어쩌면 과학에 있지 않을까.


얼마 전 월스트리트의 유명 투자자인 워렌 버핏은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월스트리트 금융업체들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금융상품'에 무리하게 차입한 돈을 투자하며 위험 통제기능을 상실했다는 점을 들었다. 월스트리트에서 전통 제조업 투자를 선호했던 그는 파생상품을 ‘금융계의 대량 살상무기'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일부에서는 금융업체들이 주택담보대출과 연계해 판매한 파생상품을 미국 정부에서 제대로 규제하지 않은 것은 정책적 실패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980년대 ‘로켓 과학자'라 불리는 미국항공우주국(NASA) 출신의 물리학자들이 월스트리트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투자회사나 은행에서 금융데이터를 분석하고 새로운 금융상품을 개발했다. 이때부터 파생상품을 비롯한 금융상품을 개발하는 금융공학이 각광받았고, 최근에는 사람의 경제 행위와 신경과학을 연결시킨 신경경제학(Neuro-economics)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금융공학과 신경경제학에는 과학이 숨어 있다.

주가는 담배연기처럼 움직여

주가의 변동이 담배연기나 분자가 움직이는 법칙인 ‘브라운 운동'을 따른다는 견해는 이미 1960년대에 제시됐다. 1973년에는 물리학자 피셔 블랙과 경제학자 마이런 숄즈가 머리를 맞대고 옵션(주가가 떨어지면 큰 손해를 보지만 주가가 많이 오르면 큰 이익을 얻는, 복권 같은 파생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수학식을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바로 ‘블랙-숄즈 옵션가격모형'이다. 블랙-숄즈 모형은 사실상 ‘금융공학' 탄생의 신호탄이다.

 

구소련이 붕괴하며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자 미국의 우주개발에 대한 투자가 줄었고 이에 따라 많은 물리학자들이 금융계로 진출하면서 금융공학이 확산됐다. 1990년대에는 금융공학이라는 개념이 실생활에 널리 퍼졌다. 금융공학에는 파생상품 설계, 위험 관리, 보험 수학과 같은 분야가 있다.

금융공학자들은 주식시장을 움직이는 여러 변수를 찾은 뒤 이들 변수에 수학, 물리학, 공학을 적용해 경제현상을 설명하고 새로운 금융상품을 개발한다. 주식시장은 기업가치, 경기, 환율, 물가, 유가, 정치상황, 사건, 소문, 천재지변 같은 변수에 영향을 받아 쉴 새 없이 요동친다. 특히 퀀트(Quant: Quantitative Analyst, 금융 시장 분석가, 주식 투자 상담가)라는 전문가가 시장의 변수와 위험요인을 염두에 두고 수학과 과학지식을 총동원해 정교한 금융상품을 만든다.

물론 주식시장은 결코 변수의 변화에 따라 규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어떤 경우 주가는 마치 술 취한 사람의 걸음걸이처럼 예측하기 어렵다. 주식거래에는 반드시 위험이 따르는 법. 따라서 투자자는 금융공학을 주가 자체를 예측하는 도구가 아니라 어떻게 투자하는 것이 최적인지를 판단하는 지침으로 삼는 것이 좋다.


주식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호르몬?

요즘 뜨고 있는 신경경제학은 투자, 마케팅, 협상 같은 사람의 다양한 행동에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학문이다. 신경경제학자들은 사람을 경제적으로 엉뚱한 행동을 하는 존재로 바라보며 주식시장에서 그 경향이 더 심하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요즘처럼 주가가 폭락하면 ‘공포 회로'라 불리는 뇌의 편도체가 작동해 보통 사람은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면 공포감에 빠져 멀쩡한 주식을 팔아 치우기 일쑤다. 또 펀드를 선택하는 경향을 들여다보면 많은 경우 장기 실적은 안 좋지만 단기 실적이 우수한 펀드에 투자한다. 우리의 뇌가 단기 보상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올해 초에는 주식시장에서 주가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 호르몬일지 모른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이 런던 증권사 객장에서 일하는 남성 주식거래인 17명을 8일간 추적해 분석한 결과 오전에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높은 주식거래인이 그날 대박을 터뜨릴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 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수치는 시장의 불확실성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진은 테스토스테론과 코르티솔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데, 주식거래인들이 주식시장을 폭등과 폭락으로 이끌 만큼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 두 호르몬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즉 자신감과 모험심을 불러일으키는 테스토스테론은 폭등장에서 증가해 위험을 감수하며 상승세를 부추기는 반면,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람을 신중하게 만드는 코르티솔은 폭락장에서 높아져 위험을 피하도록 하며 증시의 하락세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소비자의 속마음 엿보는 뇌영상

신경경제학 중에서 신경과학을 마케팅에 활용하는 분야가 바로 ‘뉴로마케팅(Neuro-marketing)'이다. 특히 21세기에 들어 일부 기업에서 뇌의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을 촬영해 제품이나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분석함으로써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미국 베일러의대 연구진은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를 대상으로 브랜드 이미지에 대한 실험을 했다. 사람들에게 눈을 가린 채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를 마시고 어느 콜라의 맛이 더 좋은지를 선택하게 하면서 fMRI 장치로 뇌를 촬영했다. 그 결과 코카콜라보다 펩시콜라를 마셨을 때 보상이나 의사결정에 관련된 뇌 부위가 활성화됐다. 그러나 당시 소비자들은 시장에서 펩시콜라보다 코카콜라를 더 많이 구입했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난 것일까.

연구진은 사람들이 코카콜라라는 브랜드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즉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할 때 부지불식중에 브랜드 이미지에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소비자의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도구가 바로 뉴로마케팅인 셈이다.

다임러크라이슬러, 제너럴모터스, 켈로그 같은 기업에서 소비자가 제품의 광고나 디자인을 볼 때 뇌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분석하는 연구를 많이 해 왔다. 2004년 독일의 자동차회사인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젊은 남성 고객을 대상으로 다양한 차종에 대한 반응을 살펴봤다. 평균 31세의 남성 열두 명에게 스포츠카, 세단, 소형차 사진을 보여 주며 fMRI로 뇌를 찍은 결과, 남성 고객은 스포츠카 사진을 봤을 때 사회적 지위나 보상과 관련된 뇌 부위가 매우 강하게 반응했다. 이는 젊은 남자들이 스포츠카에 ‘필이 꽂힌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다.

국내에서도 학계를 중심으로 뉴로마케팅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고려대 소비자광고심리연구실에서는 태평양의 화장품 ‘라네즈'의 브랜드 파워를 알아보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20대 여성 열 명에게 해외 명품 화장품과 함께 라네즈의 브랜드 광고와 제품 사진을 보여 주면서 fMRI로 뇌를 촬영했다. 실험 결과는 흥미로웠다. 해외 화장품 광고 중 일부를 보고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뇌에서 라네즈 광고를 보고는 과거 경험을 떠올리는 부위와, 흐뭇한 기분을 느끼는 부위가 눈에 띄게 반응했던 것. 연구진은 사람들이 은연중에 라네즈 제품을 써 보고 좋다고 생각한 적이 있거나 브랜드를 잘 안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국내 소비자들이 해외 명품이라면 무조건 국내 브랜드보다 더 좋아할 것이라는 추측이 잘못됐음을 나타내는 결과다.

고려대 연구진은 야한 광고의 수위에 대한 소비자의 뇌 반응도 살펴봤다. 20대 남자 대학생 열일곱 명에게 명백히 성행위를 묘사한 광고, 과감하게 신체 부위를 노출한 광고, 성행위를 암시한 광고, 신체 부위를 암시한 광고를 보여 주면서 뇌 영상을 찍었다. 실험 결과 젊은 남자들의 뇌는 노골적으로 성을 묘사한 광고보다 은근히 신체 부위를 암시하는 광고에 더 격렬히 반응했다. 노골적인 광고보다 은근히 암시하는 광고가 더 효과적이란 뜻이다.

- 이충환 / <과학동아> 부편집장.
서울대 대학원에서 천문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고려대 과학기술학 협동과정에서 박사과정(과학언론 전공)을 수료했다. 1999년부터 과학전문기자 활동을 시작했으며 옮긴 책으로 <상대적으로 쉬운 상대성이론>, <빛의 제국>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는 <블랙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