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경영

멜라민 파동, 피겨스타 김연아에게서 배우는 과학 이야기

南塘 2008. 11. 15. 11:16

[흥미로운 과학, 호기심을 채우자 1편] 멜라민 파동, 피겨스타 김연아에게서 배우는 과학 이야기 
 
혹시 ‘과학'이란 말을 들으면 고개부터 설레설레 흔들진 않는지…. 이제 ‘어렵고 복잡하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과학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서 보자. 딱딱한 과학, 실험실 안에서 박제되어 있는 과학이 아닌 거리를 걷듯, 음악을 듣듯, 맛있는 음식을 먹듯 우리 생활 곳곳에서 과학을 만날 수 있다. 단지 우리가 모를 뿐. 일상 생활 속에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과학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멜라민 파동
월요일 아침 회의에 앞서 30분 일찍 사무실에 도착한 ‘성실맨' 김지식 부장은 조간신문에 난 중국발 식품사고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중국에서 식품 원료가 아닌 ‘멜라민'이 들어간 분유를 먹은 수만 명의 아기가 신장 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급기야 이들 가운데 네 명이 죽었다는 내용이다. ‘멜라닌 때문에 아기가 죽었다고? 어라~ 멜라닌이 아니라 멜라민이네. 도대체 멜라민은 뭐야? 중국인들은 먹으면 안 되는 멜라민을 식품에 왜 넣은 거야?' 멜라민 분유를 먹은 아기는 왜 신장 질환에 걸렸을까.

#복사기 낭패
아침 회의 결과 내용을 팀원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 김 부장은 손수 복사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복사기에 종이가 걸린 것이 아닌가. 복사기 덮개를 열고 중간에 걸린 종이를 빼다가 검은 토너가 손에 잔뜩 묻고 말았다. 낭패라는 생각과 함께 떠오르는 의문. ‘복사가 잘 된 종이에서는 토너가 안 묻는데, 왜 복사기에 걸린 종이에는 토너가 묻는 걸까'.

#김연아의 환상적인 회전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자리로 돌아온 김 부장은 양치질을 하고 잠시 인터넷 서핑을 하다 흐뭇한 소식을 발견했다. ‘피겨 퀸' 김연아 선수가 고난이도 점프와 회전 기술로 국제빙상대회에서 우승했다는 것. 김 선수의 경기 동영상을 보며 드는 궁금증. ‘어떻게 저토록 빨리 회전할 수 있을까.'

누구나 일상생활 중에 김 부장과 비슷한 궁금증을 만날 수 있다. 멜라민 파동의 진실, 알면 쓸모 있는 복사기의 원리, 김연아 선수의 회전 동작도 과학으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 과학(科學)을 뜻하는 영어 ‘Science'는 어떤 사물을 ‘안다'라는 뜻의 라틴어(Scire)에서 유래한 말이다. 즉 과학은 합리적 방법으로 얻어진 체계적 지식을 가리킨다. 생활 속에서 지식의 차원을 넓히며 과학의 중요성을 함께 느껴 보자.


멜라민, 단백질로 둔갑해 신장 결석 일으켜

사실 멜라민이 든 중국산 식품이 주변 국가에 수출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가 멜라민 파동에 휩싸였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중국산 우리 상표 과자, 커피용 식물성 크림, 수입 과자, 중국산 채소, 닭 사료 첨가제, 건빵 등에서 멜라민이 잇따라 검출됐다.

이번 파동을 겪기 전에 일반인은 멜라민에 대해 잘 몰랐다. 발음이 비슷해 피부나 머리카락의 색깔을 결정하는 검은 색소인 멜라닌과 혼동할 정도였다. 멜라민은 탄소원자 세 개, 수소원자 여섯 개, 질소원자 여섯 개로 구성된 분자로 탄소에 비해 질소 비중이 높다.

일부 중국인들은 분유를 제조할 때 단백질 함량을 속이기 위해 멜라민을 집어넣었다. 분유가 시판허가를 얻으려면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같은 영양소의 함량이 기준치를 넘어야 하는데, 이들은 분유에 당과 지방을 넣고 여기에 단백질 대신 멜라민을 섞은 것. 그렇다면 어떻게 싸구려 이물질인 멜라민이 단백질을 대신할 수 있었을까.

보통 식품에서 단백질 함량을 검사할 때는 단백질을 따로 추출하는 대신 질소 함량을 측정해 단백질 양을 추정한다. 질소는 각 영양소 중에서 대부분 단백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유 제조업자들은 멜라민의 질소 함량이 높다는 사실을 악용했던 것. 식품에 멜라민을 1%만 넣어도 단백질 함량이 4% 이상 증가하는 효과를 봤다고 한다.

그렇다면 멜라민 분유는 어떻게 신장 질환을 일으킨 걸까. 사실 멜라민 문제는 지난해 초 미국에서 불거졌다. 수백 마리의 애완동물이 중국산 사료를 먹고 병에 걸려 죽자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수의학협회에서 원인 조사에 나섰는데, 그 결과 사료에 멜라민이 섞여 있었고 죽은 동물의 신장에 결석(結石)이 박혀 있었다.

멜라민 사료를 먹은 동물은 신장에서 멜라민이 시아누르산(멜라민이 변형돼 만들어진 물질)과 결합, 결정을 형성해 결석을 만드는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멜라민 분유를 계속 먹은 아기들은 신장에 결석이 자라나 심한 경우 죽음에 이른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멜라민이 검출된 국내 유통 식품은 신장 결석을 일으킬 만한 양이 포함돼 있지는 않았다.


김연아 선수에게 배우는 태양계 탄생

김연아 선수의 아름다운 회전 동작을 유심히 살펴봤다면, 양팔과 한쪽 다리를 넓게 벌렸다가 몸통 쪽으로 급히 오므릴 때 회전이 빨라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문 용어로 물리학의 ‘각운동량 보존 법칙' 덕분이다(회전하는 물체의 회전 운동 세기를 뜻하는 각운동량은 물체의 질량과 회전속도에 회전축으로부터 떨어진 거리를 곱한 양이다.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을 때 각운동량은 일정하게 보존된다).

비보잉(B-Boying)에서 물구나무를 선 채 손으로 바닥을 짚고 빠르게 회전하거나 머리를 바닥에 대고 몸을 수직으로 세워 빙글빙글 돌릴 때도 피겨스케이팅 회전 동작과 비슷하다. 굽혔던 다리를 위로 쭉 펴면 회전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다. 물론 같은 시간에 더 많이 회전할 수 있다. 다이빙 선수가 공중에서 몸을 최대한 끌어안는 이유도 이런 원리로 회전수를 늘리기 위한 것이다.

피겨스케이팅 회전 동작과 비슷한 과정은 지구가 포함된 태양계가 탄생하던 시기에도 나타났다. 가스와 먼지로 구성된 거대한 타원형 성운이 느리게 회전하다가 서로 끌어당겨 수축하자 성운의 회전이 빨라졌던 것이다. 점차 성운 중심에 태양이 탄생하고 주변에 지구를 비롯한 행성이 생겨났다. 이렇듯 과학이란 지식은 태초의 성운부터 현재의 피겨스케이팅까지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과학은 궁극적으로 알고 싶어 하는 욕망, 즉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학문이다.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고?

현대문명을 이룩한 발명이나 발견을 가져온 원동력도 사실 과학이다. 지금은 누구나 편리하게 사용하는 복사기를 살펴보자. 복사기는 정전기의 원리를 이용한 기기다. 건조한 겨울에 털이 많은 스웨터를 벗을 때 찌릿하거나 머리를 빗을 때 플라스틱 빗에 머리카락이 들러붙는 원인이 바로 정전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마찰전기로 알려진 정전기는 18세기 후반부터 정량적 연구가 이뤄졌고, 정전기를 이용한 복사기는 70년 전인 1938년 미국의 체스터 칼슨이 발명했다. 복사기 안에는 정전기를 띤 실리콘 분말을 코팅한 알루미늄 드럼이 들어 있는데, 복사대상에 빛을 쪼여 거울로 드럼에 반사시키면 글씨 부분에만 정전기가 남고, 검은 가루인 토너는 이 부분에만 달라붙는다.

글씨 부분에만 토너가 묻은 드럼 아래로 빈 종이를 통과시키면 원본과 같은 내용이 종이에 나타나고, 열을 가하면 토너 입자가 종이에 밀착된다. 드럼을 통과했지만 열을 가하기 전에 걸린 종이를 빼내다 보면 검은 토너가 손에 묻기 십상이다.

과학은 대부분 오랜 시간이 흘러 수많은 연구결과가 쌓일 때 쓸모 있는 기술이 된다. 19세기 말 영국의 마이클 패러데이가 연구한 ‘전자기유도법칙'이 좋은 예다. 당시 영국의 재무장관이 “이 연구가 도대체 어디에 쓰이냐”고 물었을 때, 패러데이는 “언젠가 이것 때문에 세금을 거둬들일 때가 올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실제 그의 연구는 긴 세월이 지나 발전기, 변압기, 전기 모터의 기본원리로 현대산업의 뿌리가 됐고 엄청난 세금을 거두는 바탕이 됐다. 물론 패러데이의 영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백열전구, 축음기, 영사기, 축전기 등 1,000여 종 이상을 발명했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도 패러데이가 지은 책 〈전기학의 실험적 연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 이충환 / 〈과학동아〉 부편집장. 서울대 대학원에서 천문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고려대 과학기술학 협동과정에서 박사과정(과학언론 전공)을 수료했다. 1999년부터 과학전문기자 활동을 시작했으며 옮긴 책으로 〈상대적으로 쉬운 상대성이론〉, 〈빛의 제국〉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는 〈블랙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