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진짜 원하는 것은 ‘드릴’이 아니라 ‘구멍’이다
세상 속으로 나온 심리학 2편] 소비자가 진짜 원하는 것은 ‘드릴’이 아니라 ‘구멍’이다 | |
매년 3만 개 이상의 신제품이 미국 시장에 쏟아져 나오지만 그중 90% 이상이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4년 동안 20만 명의 소비자를 상대로 맛 테스트와 수백만 달러의 마케팅 비용을 들이고도 실패한 코카콜라의 뉴 코크(New Coke) 사례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소비자의 니즈와 동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과 제품은 시장에서 도태되고 만다. 많은 기업들이 소비자의 심리를 정확하게 읽고 이를 제품 개발과 마케팅 전략에 반영함으로써 새로운 고객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제품 개발과 제품 디자인, 광고와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마케팅 조사를 포함한 마케팅 전반에 걸쳐 적용되고 있는 심리학의 원리와 사례들을 통해 그 해법을 찾아 보자.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소비자의 심리를 읽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소비자 통찰력(Customer Insight)이야말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필수 요소인 것이다. P&G는 청소기인 ‘스위퍼(Swiffer)'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소비자의 일상생활을 직접 관찰하는 참여관찰법을 통해서 소비자가 바닥을 청소하면서 겪는 문제점들을 면밀히 검토하였다. 관찰 결과는 이렇다.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바닥 청소를 하며 많은 양의 물과 세제를 사용한다. 그리고 세제를 헹구어 낼 때는 더 많은 양의 물을 소비한다. 또한 소비자는 바닥 청소보다 걸레를 빠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어느 누구도 바닥 청소와 더러운 걸레를 만지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바닥 먼지는 달라붙지 않는 먼지로 물로 청소를 하게 되면 물 표면 위에 떠 있다가 물이 마르면 다시 바닥에 남아 있게 된다는 것도 발견하였다. P&G는 이렇게 소비자 관찰에서 발견한 소비자 통찰력을 십분 활용해서 전기장을 이용한 일회용 종이 걸레인 스위퍼를 개발할 수 있었다. P&G의 사례는 아주 작은 관찰의 단서로부터 출발해서 소비자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적극적인 사고를 통한 제품 개발의 성공 사례를 보여 준다. 소비자의 심리를 꿰뚫어 보기 위한 또 다른 연구 사례를 보자. 고객들로 하여금 자사의 서비스를 더 자주 이용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충성도를 높이는 프로그램에 관한 연구이다. 어느 세차장의 고객 300명을 두 집단으로 나눠 스탬프 카드를 주고 세차를 한 번 할 때마다 도장을 한 번씩 찍어 주었다. 두 집단에게 각각 나눠 준 카드는 도장을 찍는 칸이 여덟 개인 것과 열 개인 것 두 가지였다. A 집단의 카드는 여덟 번의 세차 후에 무료 세차를 받는 것이었고, B 집단의 카드는 무료 세차를 받으려면 도장을 열 번 찍어야 하지만 도장 두 번을 미리 찍어 주기 때문에 이 카드 역시 여덟 번의 세차를 하면 무료 세차를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몇 달 후 결과를 검토해 보니, A 집단의 소비자 중 무료 세차를 받기 위해 여덟 번을 세차한 소비자는 19%였으나 B 집단은 34%였다. 또한 여덟 번째 세차를 하기까지 걸린 시간도 B 집단이 훨씬 더 짧았다. 커피 전문점의 고객을 대상으로 수행한 다른 연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는 학습이론 중 보상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중요한 시사점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프로그램보다는 일단 시작하도록 동기를 부여해 준 프로그램을 완성하려는 경향이 더 강하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충성도 프로그램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05년 디자인을 기업 성장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한 P&G의 앨런 래플리 회장은 기업이 소비자를 만나고 소비자의 생활을 직접 관찰해서 소비자의 니즈(Needs)를 찾아 내고 이를 제품 디자인에 반영하겠다는 전략을 밝힌 바 있다. 제품 사용의 혜택뿐 아니라 제품을 보고, 만지고, 느끼는 모든 경험의 가치를 소비자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지론은 인간 중심의 디자인 개발 기법인 ‘디자인 사고(Design Thinking)'에서 출발한다. 디자인 사고란 모든 혁신 활동에서 소비자의 심리적 욕구를 소비자의 가치와 마케팅 기회로 전환하는 디자이너의 감수성과 기법이다. 다시 말해서 혁신은 소비자가 일상생활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특정 제품에 대해 어떤 점이 좋고 싫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충분히 이해한 뒤,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기업들은 디자이너에게 이미 개발이 완성된 제품 아이디어를 소비자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전략을 묻는 것이 아니라 개발 초기부터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놓기를 원하고 있다. 제품 디자인과 혁신에 관한 전문 컨설팅 업체인 IDEO는 이러한 디자인 사고의 과정을 문제 해결 방법의 탐색을 동기화하는 영감(Inspiration) 단계,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테스트하는 아이데이션(Ideation) 단계, 아이디어를 시장에서 구현하는 실행(Implementation) 단계로 제시하고 있다. 디자인 사고의 성공적인 사례로 일본의 자전거 전문 기업 ‘시마노(Shimano)'를 들 수 있다. 2004년 미국 시장에서 고가의 도로용 자전거와 산악 자전거 부문에서 침체기를 맞은 시마노는 IDEO에 디자인 사고 기법을 의뢰했다. 첫 단계에서 디자이너, 행동과학자, 마케터, 기술자는 고가의 시장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전체 소비 시장을 다시 점검하자는 데서 논의를 시작했다. 그들은 소비자 관찰을 통해 90% 이상의 성인이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냈고, 이들도 어린 시절에는 자전거에 대한 즐거운 추억이 있음을 발견했다. 또한 많은 미국인들이 자전거의 복잡한 기능과 높은 가격, 자전거 액세서리와 전문 의류, 자전거를 탈 때의 위험성, 잘 타지 않으면서 고가의 장비를 유지 보수해야 하는 부담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냈다. 이러한 소비자 중심의 탐색을 통해 시마노는 전혀 새로운 자전거를 만들어서 소비자로 하여금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고 부정적인 경험을 제거하자는 아이디어를 도출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디자인 팀은 안장이 안락하고 조작과 유지 보수가 간편한 여가용 자전거 ‘코스팅(Coasting)'을 개발하였다. 또한 코스팅 자전거를 인생을 즐기는 자전거로 포지셔닝하고 웹사이트를 이용해 안전하게 자전거를 즐길 수 있는 장소도 홍보하였다. 코스팅 자전거는 2007년 성공적으로 신제품을 론칭하였고 10개의 제조업체가 코스팅 자전거를 생산하기로 계약하였다. 이는 제품 혁신은 소비자의 욕구와 행동에 대한 완전한 이해로부터 출발해야 하며, 소비자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 소비자의 일상을 직접 관찰하는 것이 매우 유용함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스페인의 유명 의류업체인 자라(ZARA)도 소비자로부터 직접 제품 아이디어를 얻는다. 소비자의 참여 욕구가 커지면서 자라는 전 세계 1,000여 명의 창조적 소비자(Cresumer)로부터 제품과 관련된 다양한 최신 정보와 니즈를 제공받는다. 이를 바탕으로 전 세계 68개국 1,300여 개 매장에서 최신 제품을 동시에 출시하고 있다. 자라의 제품 라인 70%가 2주에 한 번씩 바뀐다. 소비자의 통제감 욕구(자신과 주변 세계를 통제하려는 욕구), 남들과 다르게 보이려는 독특성 욕구, 그리고 끊임없이 변하는 제품 니즈를 잘 반영한 전략이다.
SK텔레콤의 ‘생각대로 T'는 소비자의 심리를 브랜드 이미지와 광고에 잘 접목시킨 성공적인 광고 사례로 볼 수 있다. 2006년 1월부터 2008년 1월까지 세 단계에 걸쳐 브랜드 캠페인을 벌여 온 SK텔레콤은 세련되고, 지적이고, 1등 브랜드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창출했지만 동시에 차갑고, 계도적이고, 일방적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함께 형성되어 소비자와의 거리감을 좁히지 못하고 있었다. 수많은 소비자 조사와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을 통해 얻은 소비자 통찰은 한정된 소비자의 소유가치라는 기존의 이미지를 버리고 모든 소비자의 사용가치, 감성가치 더 나아가 문화가치라는 브랜드 아이텐티티를 구축하는데 반영되었다. 이러한 소비자 중심의 브랜드 가치를 소비자 언어화한 것이 바로 ‘생각대로 T'라는 브랜드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또한 ‘되고송'을 통해 소비자의 심리적 개방과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긍정의 힘'을 이용한 긍정 메시지 캠페인을 통해 사회적 명분을 얻는 데 성공하였다. ‘되고송' 열풍은 수많은 패러디 콘텐츠를 만들어 냈고, 이 광고는 자기 통제감의 욕구와 채워지지 않은 부분을 완결하려는 소비자의 심리를 잘 활용한 성공적인 캠페인으로 평가받았다.
마케팅에서 심리학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또 다른 영역은 마케팅 조사 분야다. 그동안 기업의 마케팅 조사 기법은 설문조사(Survey)와 같은 정량조사와 심층면접, FGI(Focus Group Interview) 등의 정성조사에 주로 의존해 왔다. 그러나 이같은 언어적 반응만으로는 실제 소비자들의 욕구와 동기를 충분히 밝혀 내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최근에는 지메트(ZMET), 아이트래킹(Eyetracking), 뇌촬영기법(fMRI) 등 소비자의 심리를 읽고 다양한 소비자의 니즈를 찾아 내기 위한 기법들을 활용하고 있다. 제럴드 잘트만 하버드대 명예교수의 ‘지메트(ZMET)'는 이미지와 은유를 이용해 무의식적 동기를 밝혀 내는 기법으로 정신분석학 이론을 근거로 한다. 일대일 면접, 이미지와 은유로 이야기를 꾸미는 디지털 콜라주, 감성 지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소비자의 숨어 있는 동기를 찾아 내어 신제품 콘셉트 개발과 광고에 활용한다. 하나의 사례로 타이레놀을 대상으로 지메트를 실시한 결과, 주부 참가자가 타이레놀을 생일 케이크의 이미지로 묘사했는데 이 주부에게는 타이레놀이 남편과 아이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이미지와 신뢰감으로 상징화됨을 알 수 있다. 이 결과는 소비자가 타이레놀이 다른 두통약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더 선호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바로 이러한 감성적인 이미지에서 찾을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제품과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여기에 변화를 넘어 진화해 가는 소비자가 있다. “소비자가 1/4인치 짜리 드릴을 사는 이유는 1/4인치 짜리 드릴이 아니라 1/4인치 짜리 구멍을 원하기 때문이다.”라고 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편집자 테드 레빗의 주장처럼 소비자 동기와 욕구를 이해하는 것은 제품 개발과 마케팅의 출발점이며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필수 요건임에 틀림없다. 소비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소비자의 마음을 바르게 읽을 줄 아는 것이 시장에서 성공하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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