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경영

레고의 위기극복책 / 불가능이

南塘 2008. 10. 9. 11:53

[위기를 극복한 기업 3편] 레고의 위기극복책 / 불가능이 없는 장난감 왕국에도 ‘위기’는 있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아날로그 장난감 레고에게 치명적인 위기였다. 가장 중요한 위기 극복책은 바로 ‘핵심'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레고는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를 적극 수용하면서도 자신들의 핵심 요소는 조립식 장난감 사업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즉, 핵심을 버린 변신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경영의 기본을 깨닫게 된 것이다.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했던 장난감 왕국 레고, 그들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을까?


어릴 적, 레고(Lego)는 ‘꿈'이었다. 원하는 것, 갖고 싶은 것을 모두 품에 안겨 주었기에……. 레고만 있으면 자동차는 물론 집도, 목장도 언제라도 원하는 것을 현실로 그려 낼 수 있었다. 이런 마술 같은 장난감을 갖고 싶지 않은 어린이가 얼마나 될까?

AFP통신은 레고에 대해 “어느 장난감도 넘보지 못하는 무한한 상상력을 허용한다”고 평가했고, 경제전문지 <포춘>은 레고를 ‘세기의 장난감'이라고 추켜세웠다. 레고는 시간이 흘러도 싫증나지 않고, 자유로운 조합으로 어린이들의 창의성과 상상력, 호기심을 키워 주었다.

레고가 특허를 출원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지 올해로 꼭 50주년을 맞았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레고 역시 50번째 생일을 맞을 때까지 위기가 없을 수 없었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아날로그 장난감 레고에게는 치명적인 위기였다. 레고의 등장과 성공, 위기의 과정을 조명해 보고,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는지 점검해 보자.

1932년 덴마크 목수가 아들의 장난감으로 만든 레고

레고의 역사는 1932년 덴마크의 한 작은 마을 목수인 올레 커크 크리스티안센이 아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만든 목재 장난감에서 출발한다. 그는 자투리 나뭇조각으로 이것저것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사소한 목각 놀이 장난감이 레고의 모태다.

레고는 제품 이름과 회사 이름이 같다. 덴마크어인 ‘레그 고트(Leg Godt)'의 앞 글자를 따서 지은 레고는 ‘잘 놀자'라는 뜻이다. 당시에 커크 크리스티안센은 잘 몰랐지만, 그리스어로 레고는 레고의 특성과 딱 맞는 ‘잘 조립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로 두 개, 세로 네 개의 요철을 가진 레고 기본형은 1949년 처음 시장에 선보였고, 설립자의 아들인 고트프레드 커크가 1958년 레고를 ‘자동 결합 블록'으로 특허 출원했다. 레고 블록 두 개로 24개의 조합이 가능하고, 여섯 개면 조합이 무려 9억 1,500만 개로 늘어난다. 블록이 100개면 조합 수는 거의 무한대로 늘어나는 창의적인 오프라인 놀이문화다.

레고는 자유자재로 원하는 모형을 만들 수 있어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전 세계에서 초당 일곱 박스의 레고 블록이 팔리고, 사람들은 매년 50억 시간을 레고 조립에 투자한다고 한다.

세계 7대륙 최고봉을 등정한 산악인 허영호 씨는 1987년 에베레스트에 오른 뒤 정상에 레고 장난감을 두고 왔다. 어릴 때부터 갖고 놀던 레고에 대한 사랑을 표시한 것이다.


디지털 게임기의 등장으로 파산 위기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던 레고는 특허 출원 후 40년 만인 1998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한다. 1994년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이 등장하면서 비디오 게임이 아이들의 삶 속에 파고든지 꼭 4년 만의 일이다. 그 뒤 적자는 2000년, 2003년, 2004년으로 이어졌다.

최대 위기는 2003년이었다. 최악의 매출로 16억 크로네(Krone: 덴마크의 화폐 단위로 약 2,700억 원) 상당의 적자를 기록했다. 빚도 늘어나 총부채가 50억 크로네(8,200억 원)에 달했다. 시중에는 세계 최대 장난감 회사인 미국의 마텔이 레고를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금융회사들은 적대적 인수합병(M&A)의 최대 먹잇감으로 레고를 지목하기도 했다. 어디로 보나 사면초가(四面楚歌)의 국면이었다.

당시 레고는 비디오 게임의 등장과 함께 디지털 시대에 발맞추지 못했다. 덴마크의 대표적인 족벌 기업 소유로 회사 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2003년 위기에 봉착하면서 크리스티안센의 자손들은 고민에 빠졌다. 회사를 팔 것인가 말 것인가에서부터 시작해 소유와 경영은 어떻게 할지, 또 디지털 게임이라는 강력한 경쟁 상대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 다각도로 위기를 분석했다.


위기 극복책 1 / 전문 경영인 영입, 객관적인 시각으로 위기를 분석하다

당시 레고는 세계 장난감의 대명사이자 덴마크의 보물이었다. 크리스티안센 가족은 레고를 매각하지 않고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기로 했다. 대신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기기로 했다.

레고에 8억 크로네(약 1,300억 원)를 추가로 투자하고 맥킨지 경영 컨설턴트 출신인 조르겐 크누드스톱을 영입했다. 전문 경영인 영입은 시장에 레고가 위기를 인식하고 변화를 주겠다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크누드스톱 최고 경영자(CEO)는 부임하자마자 장난감 소매상들과의 접촉을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 뒤 사업 다각화가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레고는 경영 위기를 극복한다는 이유로 핵심 분야인 장난감 외에 여성 의류, 시계, 비디오 게임 등으로 비즈니스를 다각화했다. 이는 고객으로 보다 많은 소녀들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이었지만 오히려 전통 고객인 5~9세 남자 어린이들을 놓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기에 선진국 출산율이 낮아지고 중국 등에서 초저가 복제 장난감 제품이 유입돼 레고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그동안 파악하지 못했던 문제를 전문 경영인은 객관적인 시각을 통해 정확히 짚은 것이다.


위기 극복책 2 /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실행하다

위기를 맞은 뒤 이를 극복한 기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기업 구성원이 함께 고통을 감내한 점이다. 레고에게도 아픔은 있었다. 2003년에만 8만여 명에 달하는 직원 가운데 3,500여 명이 감원됐다. 그 뒤에도 인력 구조조정은 계속됐다. 생산비용 절감을 위해 미국과 스위스 등 선진국에 자리잡은 해외공장도 없애고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멕시코와 다른 유럽으로 생산기지를 옮겼다.

디즈니랜드와 같은 네 개의 ‘레고랜드' 지분 70%를 사모펀드 회사인 블랙스톤 그룹에 팔고 한국과 미국, 호주 등지에 있던 자산도 매각했다.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실행하는 한편, 인센티브를 도입해 성과에 따른 보상 시스템을 마련했다. 경영자와 직원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업 문화도 바꿨다.

 


위기 극복책 3 / 디지털 레고로 거듭나다

구조조정만으로는 위기 극복이 쉽지 않다. 기업이 장수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비전이 있어야 한다. 비전이 없는 기업은 100년 기업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레고는 ‘디지털'을 또 하나의 핵심 비즈니스로 키우기로 했다. 테마파크와 의류 등 전형적인 오프라인 사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그 자원을 디지털 환경으로 바꿨다.

웹사이트에 ‘레고 디지털 디자이너'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용자가 자신만의 3D 모델을 가상으로 만들 수 있게 하고, 좋은 작품은 레고 본사에서 채택해 실제 완구 상품으로 출시했다. 자신이 개발한 레고가 상점에서 팔린다는 것은 고객에게 대단한 기쁨을 선사했다. 이런 노력 덕에 레고닷컴(lego.com)에는 한 달에 약 1,200만 명의 방문자가 쇄도했다.

자체 스토리를 갖춘 완구 바이오니클(Bionicle) 사업도 강화했다. 바이오니클은 책과 만화, 애니메이션과의 접목을 꾀한 것. ‘레고 스타워즈' 비디오 게임은 최고 화제작이었다. 2005년 PC, X박스,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큐브, 게임보이 등 거의 전 게임 플랫폼으로 출시된 ‘레고 스타워즈: 비디오게임(Lego Star Wars: The Video Game)'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위기 극복책 4 / 결국은 핵심에 집중하는 것이 해법

가장 중요한 위기 극복책은 바로 ‘핵심'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레고는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를 적극 수용하면서도 자신들의 핵심 요소는 조립식 장난감 사업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핵심을 버린 변신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경영의 기본을 깨닫게 된 것이다.

때문에 레고는 자신의 저작물을 라이선싱(Licensing)할 뿐 자체적으로 비디오 게임은 제작하지 않는다. 또 ‘레고 스타워즈' 비디오 게임이 잘 팔리는 것은 자사 ‘레고 스타워즈' 완구의 인기가 늘어나는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한다. 결국 핵심 역량인 조립식 블록 장난감 ‘레고'를 잘 팔리게 하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이런 변화 아래 레고는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고 다시 ‘레고다운'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애초 아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조립식 나무 블록을 만들었던 작은 마을 덴마크 목수의 순수한 마음인 것이다. 어쩌면 경영의 대원칙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 그 단순함에 있는 것 같다.


- 명순영 / 매경이코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