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경영

숨어 있는 1등 기업, 세계 최강이 된 그들의 성공 전략은?

南塘 2008. 10. 1. 12:21

히든 챔피언 해외 1편] 숨어 있는 1등 기업, 세계 최강이 된 그들의 성공 전략은? 
 

코카콜라, IBM, 삼성전자…….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글로벌 기업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들 글로벌 기업만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이름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기술 하나, 제품 하나로 독보적인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강소(强小) 기업의 힘이 만만치 않다.

숨어 있는 챔피언 기업, 그들은 누구이며 그들의 경쟁력은 무엇인지, 무엇이 그들을 1등으로 만들었는지를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유럽의 피터 드러커'로 통하는 저명한 독일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Hermann Simon) 박사는 이름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강력한 힘을 지닌 기업을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s)'이라고 정의했다. 지몬 박사의 저서 <히든 챔피언>은 올해 삼성경제연구소가 뽑은 ‘CEO가 휴가 때 읽을 책' 목록에 선정되기도 했다.

지몬 박사는 그의 책에서 히든 챔피언은 기술지향적인 전통을 지닌 독일어권 국가를 비롯해 미국, 일본 등 전 세계에 2,000여 개가 있다고 분석했다.

에네르콘 : 품질 제일주의로 세계 최강이 된 히든 챔피언

지몬 박사가 가장 인상적인 히든 챔피언 기업으로 꼽은 기업은 독일의 ‘에네르콘(Enercon)'이다. 에네르콘은 풍력(風力) 에너지 시장의 ‘메르세데스 벤츠'로 불리는 회사다.

에네르콘은 1984년 설립된 풍력발전기 제조 회사로, 전 세계 풍력발전기 특허의 40%를 소유하고 있다. 특히 회전 속도가 빠르고, 고장이 적게 나며, 마모 위험이 적은 무(無)기어 발전 설비를 최초로 개발했다. 지멘스와 같은 대기업도 에네르콘의 라이선스를 얻어 발전기를 생산한다.

연 매출액은 30억 유로에 달하고 직원 수는 1만 명. 에네르콘의 제품 가격은 경쟁사보다 약 20% 가량 비싼 데도 10년 만에 회사 매출을 약 열 배로 키웠다.

 

생산단계 전체를 자체 관리
이 기업의 핵심 전략은 ‘품질 제일주의'다. 경쟁사들이 대부분의 부품을 외부에서 구입해 조립하지만 에네르콘은 거의 직접 생산한다. 우수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75% 이상의 부품을 자체 생산하는 것이다. 탑, 회전날개 같은 부품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사의 풍력 에너지 장치를 운반하는 데 쓰이는 특수한 배를 주문 제작해 사용할 정도이다.

에네르콘의 우수한 품질은 무엇보다 생산단계 전체를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데 그 비결이 있다. 판매 제품에 대해서는 12년간 점검, 수리 및 모든 돌발 사태를 책임지고 해결해 주는 보증제도를 운영한다.

내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글로벌 기업화
에네르콘처럼 품질과 기술로 세계를 제패한 히든 챔피언 기업은 특히 독일에 많다는 것이 지몬 박사의 분석이다. 이웃 국가인 프랑스는 중앙집권적 국가가 일찍 형성된 반면 독일은 오랫동안 군소(群小) 국가들이 난립했다. 이러한 이유로 독일 기업들은 비교적 규모가 적은 내수시장을 무대로 활동해야 했는데, 그것으로는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일찍부터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여기에 독일의 기술지향적인 전통도 히든 챔피언을 양산하는 기반이 됐다. 독일에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전문화된 분야에 몰두하는 기업들이 많다. 가령 독일의 ‘크노프(Knopf)'라는 단추 회사는 25만 종에 이르는 단추를 만들어 낸다.


빈터할터 가스트로놈 :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토털 솔루션 구축

히든 챔피언 기업의 가장 큰 성공 비결은 ‘집중(Focus)'이다. 대기업처럼 모든 분야에 진출하기보다는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 온 힘을 쏟는다. 다시 말해 ‘넓이'가 아니라 ‘깊이'를 추구한다.

업소용 식기세척기 기업인 ‘빈터할터 가스트로놈'이 대표적인 사례다. 수년 전 업소용 식기세척기 시장에서 이 기업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5%도 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별 볼일 없는 어중이떠중이였던 것이다. 빈터할터 가스트로놈은 학교, 병원, 기업 구내식당, 군대 같은 대규모 시장을 포기했다. 그 대신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유리잔과 그릇을 깨끗이 씻어 주는 서비스업자'로 자신의 기업을 재정의하고 여기에 맞게 새로운 전략을 세웠다. 특히 식기세척기에만 머물지 않고 호텔과 레스토랑의 세척 시설에 적합한 물 공급장치와 세척제까지 개발, 이 분야의 토털 솔루션을 구축했다.

 

빈터할터 가스트로놈은 지극히 좁은 틈새시장을 개척, 전 세계 호텔과 레스토랑 분야에서 20% 가량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시장 지배력을 높였다. 작은 회사일수록 연구개발비는 빠듯하게 마련이다. 집중적으로 투자해야만 혁신을 통한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할 수 있다.


PWM·쇼케묄레 : 스스로 시장을 개척한다

어떤 히든 챔피언 기업은 시장을 스스로 만들어 100% 가까운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기도 한다. 진정한 의미의 경쟁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독일 PWM은 전기로 작동되는 가격 표지판을 만드는데, 90%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독일의 거의 모든 주유소가 PWM의 제품을 쓰고 있으며,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PWM의 사장 막스 페르디난트 크라빈켈은 “우리는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고, 유일하게 전 세계에 제품을 공급한다”고 밝혔다.

경주용 말만 전문적으로 사육하는 쇼케묄레도 비슷한 사례다. 한때 승마 선수로 세계 챔피언급에 있던 파울 쇼케묄레가 설립한 이 회사는 최고급 경주용 말과 시합용 말만을 전문적으로 사육한다. 이 시장에서는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쇼케묄레에서 사육한 최상급 말들은 한 마리에 수십만 유로에 달하며, 최상급 말은 100만 유로(약 17억 원)나 된다.

집중화 전략이 ‘계란을 한 바구니에 넣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지몬 박사는 “정말 잘하는 것에 집중한다면 늘 시장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대비하는 이점이 있다”며 “어설프게 여기저기 손대는 다각화 전략보다 오히려 덜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포크 : 압도적인 경쟁 기업 피해 틈새시장 구축

시장 점유율이 60~70%나 되는 시장 지배적 기업이 있다면 그 기업에 도전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틈새를 찾는 것이 더 현명한 전략일 수 있다. 스웨덴의 헬멧 제조회사 포크(Poc)가 좋은 사례다. 포크는 대규모 시장인 오토바이 헬멧을 겨냥하지 않고, 스키 헬멧 시장을 공략했다.

 

만일 이 회사가 오토바이 헬멧 시장에 진출했다면 무서운 시장 지배자들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다.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하는 한국의 홍진HJC 같은 회사와 경쟁하면 이길 가능성은 거의 ‘제로'다. 포크는 홍진HJC와 정면승부 대신, 스키 헬멧 분야로 눈을 돌렸다. 포크는 현재 이 분야에서 당당히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자신의 실력을 냉정히 분석하고 시장을 새롭게 정의하면서 틈새시장을 개척,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둔 사례이다.


- 김희섭 / 조선일보 산업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