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과 겨룰 핵심역량을 키우되 자신의 능력보다 한 걸음 늦게 가라!”
[김동녕 한세실업, 예스24 회장 인터뷰] “세계인과 겨룰 핵심역량을 키우되 자신의 능력보다 한 걸음 늦게 가라!” | |
글로벌 무대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김동녕 회장은 ‘핵심역량'을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김 회장은 지난 1970년대부터 세계 곳곳을 뛰어다니며 한세실업을 글로벌 기업으로 만들었다. 아무 것도 없이 시작해 큰 꿈을 이룬 그의 성공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세계 시장은 더욱 커지고, 이에 따라 경쟁도 더 치열해질 것입니다. 이럴수록 핵심역량에 집중해야 합니다. 시장이 넓어질수록 기술이나 경영 노하우 등은 더욱 깊이가 있어야 합니다. IMF 외환위기 이전에는 이와 반대의 상황이었지요. 앞으로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기술이나 비즈니스를 가져야만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김동녕 회장은 요즘 같은 글로벌시대에 꼭 가져야 할 리더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또한 누구든 세계무대에서 제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 사람과 문화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예를 들어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라고 해서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영어 외에 현지에서 필요한 언어를 공부하고, 그 나라 사람들과 스킨십을 통해 친밀감을 키우는 일도 함께 갖춰야 할 역량이라 할 수 있다. 김 회장 역시 니카라과에 공장을 지었을 당시 우려가 많았다고 한다. 워낙 빈곤국인데다, ‘현지인들이 공장에서 제시간에 일한다는 개념을 갖고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들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버스 파업으로 교통대란이 일어났다. 경제력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니 자가용은 당연히 없고, 대중교통이 마비되면 먼 거리를 이동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그는 현지 직원들이 출근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90% 이상이 제시간에 출근하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고 한다. 김 회장은 이 일을 통해 어느 나라에서 일하든 상대에게 진솔한 마음을 보이면 반드시 신뢰로 돌아온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김 회장은 35년이 넘게 경영활동을 하면서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경영의 중요성을 스스로 경험했음은 물론 한세실업의 구성원들에게도 계속해서 강조해 왔다. 그가 미국에서 MBA를 마치고 귀국해서 창업한 때는 그의 나이 28세. 당시엔 요즘의 벤처 붐처럼 수출 붐이 일었다. 수출하는 사람을 애국자로 여기던 때였기에, 김 회장 역시 자연스럽게 수출 지향형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곧바로 이어진 오일쇼크로 인해 회사가 부도가 나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절망감에 오래 빠져 있지 않았다. ‘사업은 망했어도 인생은 망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다시 시작했다. 다행히 당시 미국 최고의 유통 업체였던 K-마트가 김 회장을 믿고 판로를 열어 주어 재기를 꿈꿀 수 있게 됐다. 김 회장은 이 일을 통해 외국인이 무조건 냉정하고 자기 계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친해지면 한국인의 정서처럼 친해지고 의지가 되는 존재란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아픈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대로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규모가 아니라 내실 있게 이익을 내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다시 일을 하면서도 문제는 발생했다. 과거에는 미국에 수출할 때 쿼터(Quota, 수출입 한도량)가 있었기 때문에 다량의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쿼터가 없는 곳에 공장을 지어야 했다. 결국 1986년 라이선스를 받아서 사이판에 공장을 지으려는데, 지역 주민들이 청문회까지 열어 환경파괴 등의 이유로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김 회장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동네 농구장에 벤치를 만들어 주고, 공장 앞을 지나가는 조그만 하수구도 넓혀 주었다. 평탄치 않은 길을 뚫어야 하는 하수구 공사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한 번 망했던 사업을 두 번 다시 접을 수는 없었다. “사실 다시 시작했을 때에는 적게 시작해서 차츰 늘려 가는 방식이었고 큰 욕심은 부리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기존의 바이어들과도 다시 거래를 할 수 있었어요. 남의 나라에 공장을 짓는 것이 당시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현지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현지 인력 고용이나 장학사업 등 사회공헌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우리나라에 해외 기업이 들어와서 사회에 기여하는 바도 없이 번 돈을 무조건 본국으로 가져가면, 화가 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김 회장은 회사를 위해 일하는 글로벌 직원들을 위해 기본적인 것부터 지켜 나가고 있다. 어려운 시기에 자신이 해외 바이어에게 도움을 받았듯이 함께 일하는 이들과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재기한 그는 ‘미국인 3명 중 1명은 한세실업의 옷을 입는다'는 광고 카피처럼, 아메리칸 이글(American Eagle), 아베크롬비(Abercrombie), 갭(Gap), 빅토리아 시크리트(Victoria Secret), 나이키(Nike), 올드 네이비(Old Navy) 등 미국에만 연간 1만 벌이 넘는 옷을 수출한다. 또한 의류 공장도 베트남, 중국, 니카라과, 사이판 등 세계 6곳에 설립했으며, 각 공장에서 일하는 현지인들만 2만 명이 넘는다.
IMF로 문을 닫은 기업이 많지만, 반대로 이익을 낸 기업들도 있었다. 특히 수출하는 회사들은 환율이 올라가서 돈을 벌게 됐다. 이런 기업들은 거의 부동산에 투자했지만, 이 분야에 별 욕심이 없었던 김 회장은 M&A를 결심했다. 처음 알아봤던 회사는 물론 동종업계였다. 하지만 잘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예스24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일단 결정을 하자, 인수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막상 회사를 인수하기는 했지만, 초기에는 저도 공부를 많이 해야 했습니다. 당시 한세실업은 여의도에, 예스24는 양재동에 사무실이 있었어요. 아침에는 한세로 출근해 일하다가 점심을 먹고 예스24로 건너가서 다시 일하다가 퇴근했습니다. 여의도에서 양재동으로 건너가는 시간 동안 오프라인 마인드를 온라인 마인드로 바꾸기 위해 노력했죠.” 인수 초기에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김 회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 상황이 그렇게 좋았던 것은 아니다. 1999년 최초의 인터넷 서점으로 시작했지만, 종합 쇼핑몰에 대형 서점들도 온라인 분야를 강화하면서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회사는 적자 상태였다. 김 회장은 예스24 직원들에게 “흑자 나는 기업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증자를 통해 그 동안의 빚은 모두 갚았으니, 이제는 직원들이 모두 함께 뛰어 이익을 내야 한다는 동기부여를 한 것이다. 결국 예스24는 CEO와 전 직원들의 노력에 힘입어 1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고, 올해에만 3,0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전망이다. 또한 10년 안에 연간 매출 1조 원 달성을 내다보고 있으며, 한세실업의 경험을 통해 베트남 등 세계 시장으로 나갈 계획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김 회장이 인수한 지 5년 만에 온라인 서점은 물론 오프라인 서점까지 통틀어 코스닥에 상장했다. 그만큼 기업 규모나 재정 운영 면에서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김 회장은 한세실업이 한 번 부도가 난 이후, 다시 시작하면서 ‘한 걸음 늦게 가자'는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남들에게 뒤쳐져서 늦게 가자는 의미가 아니다. 현재 생각하고 있는 자신의 능력보다 한 걸음 늦게 가자는 이야기다. 개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열심히 하다 보면 조급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떤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빨리 결론을 보고 싶기 때문에 ‘빨리빨리'를 외친다. 이것은 결국 실패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김 회장은 삼성인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인터넷 서점 CEO인 그가 추천한 도서는 고려대 불문학과 김화영 교수의 <시간의 파도로 지은 城>이다. 고성을 일일이 방문해 문학적인 감성으로 써 내려간 이 책을 통해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추천의 이유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1억 권이 넘는 책이 발행된다”며 “우리 책을 많이 읽으면, 더 좋은 책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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