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시대를 맞이해 많은 기업들이 원가 상승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고통이 가장 큰 기업을 꼽으라면 항공업계다. 전 세계 항공사들의 주가가 떨어지는가 하면 일부 항공사는 파산 위험에 직면해 있다.
지난 8월 29일 이탈리아의 국영항공사인 알리탈리아항공사는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경영 위기를 견디다 못해 에어프랑스에 매각을 검토했으나 무산된 뒤 결국 법원의 손에 운명을 맡긴 것이다. 세계적인 관광지로 유명한 미국 하와이에는 하와이언항공, 고항공, 알로하항공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결국 가장 경쟁력이 떨어졌던 알로하항공이 문을 닫고 말았다. 알로하항공의 해고 사태는 하와이 전체의 고용 불안으로 이어졌다.
올해 2분기도 흑자, 69분기 연속 흑자 대기록
이런 위기 속에서 한 항공사의 놀라운 실적이 화제가 되고 있다. 고유가 여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69분기 연속 흑자'의 대기록을 세운 것이다. 69분기라면 17년 연속 흑자로 1991년 1분기 이후 줄곧 돈을 벌어왔다는 얘기다. 바로 미국 중형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항공이다.

사우스웨스트는 지난 2분기에 3억 2,100만 달러(약 3,210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2억 7,800만 달러)보다 두 자릿수 이상 순이익이 증가한 것은 물론이고, 과당경쟁과 고유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 항공업계와 비교하면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올해 들어 급등한 유가로 미국 6대 항공사가 2분기에 총 60억 달러의 적자를 낸 것과 비교해 아주 대조적인 현상이다.
성공 비결 1. 원가절감으로 요금도 줄여
첫째는 아예 습관처럼 굳어진 비용절감이다. 사우스웨스트는 단거리 노선의 저가정책을 쓴다. 미국 대형 항공사가 국제 노선과 대륙 간 횡단 노선에 치중한 반면 사우스웨스트는 평균 비행 시간이 1~2시간 남짓한 단거리 노선을 타깃으로 노렸다. 자가 운전의 수고를 덜고 이동 시간을 절약하려는 기차, 버스, 승용차를 타는 여행객들을 틈새시장으로 잡고 이를 공략한 것이다. 실제로 요금을 지상 여객 운송 수단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낮게 책정했다.
초창기 댈러스와 휴스턴 노선을 오가는 비행기 요금은 20달러였다. 30년이 지난 지금 요금은 올랐지만 100달러 이하로 여전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요금을 낮게 책정하니 수익이 줄어드는 만큼 비용절감으로 이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사우스웨스트는 이 문제의 해결책을 운항시간 단축과 기내 서비스 간소화에서 찾았다. 사우스웨스트 승객에게는 기내식이 제공되지 않는다. 단거리 노선인 만큼 식사가 불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고객들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또 탑승 순서에 따라 고객이 원하는 좌석에 앉도록 했다. 고객에게 불편을 주자는 의미가 아니라 수속시간과 기내에서 자리를 찾는 시간을 줄여서 운항시간을 단축하자는 의도였다.
사우스웨스트의 비행기가 공항에서 소비하는 시간은 평균 20분으로 아주 적은 편이다. 심지어 조종사들이 기내 청소를 하고 데스크 직원들이 승객들의 화물을 옮기기도 한다. 이런 노력 덕분에 9·11 같은 심각한 위기 상황도 당당히 이겨냈다.

성공 비결 2. 어려울수록 고객과의 약속은 지킨다
그렇다면 비용을 줄이는 만큼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엉망이라는 불평은 듣지 않았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사우스웨스트는 고객 불만도가 가장 낮은 기업 중 하나다. 여기서 성공의 두 번째 비결이 나온다. 그것은 고객 관점에서 출발하는 경영 마인드로 그 첫걸음은 고객과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신뢰였다.
올해 들어 유가가 치솟으면서 항공 비용이 크게 늘어났다. 많은 항공사들이 적자 노선을 폐쇄하거나 항공료를 인상했다. 일부 항공사는 수화물에 수수료를 부가하면서 기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고객에게 전가시켰다. 그러나 사우스웨스트는 노선을 폐쇄하거나 줄이지 않았고 수수료를 부과하지도 않았다. 지금도 1인당 수화물 2개까지는 요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이런 일관된 정책을 유지하다 보니 신뢰가 쌓였고 고객이 사우스웨스트로 몰려드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이러한 고객 중심의 경영 철학은 사우스웨스트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잡은 ‘유머경영'으로 이어진다.
성공 비결 3. 유머경영으로 고객과 직원 모두 즐겁게
사우스웨스트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Time flies when you're having fun!(웃다 보면 어느새 도착합니다!)'라는 글귀가 나온다.
사우스웨스트를 창립하고 2001년까지 최고 경영자의 자리에 있었던 허브 캘러허(Herb Kelleher)는 ‘펀(Fun) 경영'으로 기업을 이끌었다. 사우스웨스트를 탄 승객들은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특히나 무뚝뚝한 미국 항공사들의 승무원들과 비교해 본다면, 사우스웨스트 직원들은 참으로 유쾌하기 그지없다.
예를 들어 기내 안전 수칙을 랩뮤직으로 대신한다. 또 “담배를 피우실 분은 밖으로 나가 날개 위에서 마음껏 흡연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엉뚱한 금연 안내 방송을 듣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현재 사우스웨스트의 최고 경영자인 게리 캘리(Gary Kelly)의 홈페이지 인사말도 예사롭지 않다. 경영 철학을 나열하는 보통 CEO와는 달리 그는 자신의 일상 생활을 자연스럽게 소개하면서, 고객 중심의 경영 철학을 밝히고 있다.
고객들을 대상으로 유머경영을 펼칠 뿐 아니라 회사 내에서도 늘 웃고 즐겁게 일하자는 기업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때문에 직원 해고도 없고 노사분규가 없는 회사로 유명하다. 1987년 단 한 차례의 파업이 있었으나 그 이후에는 탄탄한 노사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 역시 파업을 일삼는 항공업계와는 대조적인 현상이다. 직원들은 회사가 어려울 때는 자발적으로 혁신 아이디어를 내놓고 실천할 만큼 애사심 역시 대단하다. 사우스웨스트 직원들은 ‘오늘은 어떤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까'를 기대하며 출근한다고 한다.
계속되는 항공업계 위기 속에도 넘치는 사우스웨스트의 자신감
사우스웨스트의 놀라운 경영 혁신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미국 항공업계의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앞으로도 유가가 계속 올라간다면 또 세계 경기가 불황을 이어 간다면 사우스웨스트에도 어려움이 닥칠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우스웨스트는 1971년 설립 이후 일관되게 조직 효율화를 통한 비용절감 노력을 지속해 왔으며 직원들을 위하는 경영자와 회사를 위해 자발적으로 일하는 직원들이 유쾌한 기업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경영 철학으로 사우스웨스트는 존경 받는 장수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우리도 그들의 ‘재미있게 일하는(Fun to work)' 방식을 배워야 할 것 같다.
- 명순영 / 매경이코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