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경영

기업의 갈 자리! 설 길! 이제는 진정한 글로벌경영 ‘메타내셔널’이다

南塘 2008. 8. 28. 12:14

기업의 갈 자리! 설 길! 이제는 진정한 글로벌경영 ‘메타내셔널’이다
 

‘다국적 기업'이 주목을 받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메타내셔널 기업(Metanational Enterprise)'의 시대다. 본사와 핵심시설은 국적지에 둔다는 방침 탓에 많은 한계를 노출했던 다국적 기업과는 달리, 메타내셔널 기업은 본사의 핵심기능까지도 해외 지사에 이전함으로써 글로벌경영의 진정한 의미를 실현하고 있다.

우리 기업이 가야 할 길의 이정표가 될 수 있는 ‘메타내셔널 기업'의 몇 가지 사례들. 메타내셔널 기업은 이미 한국에서도 꽃을 피우고 있을 만큼 현재 진행형이다.


다국적 기업 가고, 메타내셔널 기업 온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지금처럼 기업 활동이 왕성한 시절은 없었을 것이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 미국을 비롯해 일본ㆍ독일ㆍ중국 등 주요 국가에서 세계적 기업이 속속 등장하면서 글로벌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외국 기업이 최근 관심을 두고 있는 새로운 경영방식은 무엇일까. 국가 간의 경계를 허문 해외시장의 적극적 활용으로 시장을 늘리는 한편 이에 따라 매출과 수익도 증대하는 방법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답이 메타내셔널 기업(Metanational Enterprise)이 될 수도 있겠다.

메타내셔널은 ‘~을 뛰어넘어(Meta)'+‘국적(National)'의 합성어로 우리나라 말로는 ‘초(超)국적기업'으로 풀이할 수 있다.

 

메타내셔널 기업은 다국적 기업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한마디로 기업 경영에서 국적 자체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메타내셔널 기업은 생산과 연구개발 등 핵심사업뿐만 아니라 아예 본사 핵심기능까지 해외지사에서 담당한다. 기업 경영에서 이처럼 ‘국적'이 갖는 의미가 점차 퇴색하고 있는 것은 경쟁이 그만큼 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본사의 핵심기능까지도 해외 이전

유럽 최고의 경영대학원으로 꼽히는 프랑스 인시아드(INSEAD)의 교수 이브 도즈(Yves Doz)의 설명을 들어 보자. 이브 도즈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영학과 교수 피터 윌리엄슨(Peter Williamson) 등 세계적 석학과 함께 <세계화에서 메타내셔널로 : 기업이 지식경제시대에서 이기는 방법(From Global to Metanational: How companies win in the knowledge economy)>을 공동 집필한 바 있다.

“다국적 기업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경영방식을 택하고 있지만, 주 목적은 가능한 저렴한 자원을 활용하고 전 세계를 상대로 제품 판매를 극대화한다는 데 국한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라 본사는 물론 연구개발(R&D) 및 핵심부품의 생산기능은 국적지(國籍地), 즉 그 기업의 출발지역에 남겨 두는 게 특징이지요.
한 예로 세계적 신발ㆍ의류업체 나이키(Nike)를 들 수 있어요. 다국적 기업인 나이키는 전 세계에 판매망과 제조업체를 두고 있지만, 연구개발ㆍ품질관리ㆍ디자인개발ㆍ금융 등 핵심사업은 미국 오리건주 비버톤(Beaverton) 본사에 집중해 놓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많은 외국 기업이 메타내셔널 기업(Metanational Enterprise)을 지향하는 추세입니다. 제품 생산과 연구개발(R&D) 등 핵심사업뿐 아니라 아예 본사 핵심기능까지도 해외 지사 등에서 담당하고 있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이제는 기업 경영체제가 다국적 기업 대신 메타내셔널 기업 방식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새로운 기회를 발굴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

사실 메타내셔널 기업의 핵심은 생존을 위한 기회 발굴에 있다. 발굴 대상은 새로운 기술, 지식, 시장잠재력. 특히 다른 기업이 쉽게 찾거나 따라올 수 없는 지식과 기술이 주 관심사다. 또 일단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 시장잠재력을 찾은 기업들은 어느 정도 성공이 보장된다.

유럽 최대 반도체업체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대표적인 메타내셔널 기업이다. 지난 1987년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출범한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주로 주문형 집적회로, 플래시 메모리, 스마트카드, 아날로그 회로, 전력 칩 등을 만드는 기업으로 매출액은 지난 2007년 말 기준 100억 달러에 달한다.

이 회사의 특징은 ‘본사(Headquarter)'의 개념이 없다는 점이다. 흔히 본사라 하면 기업의 국적지에 자리잡거나 제품의 특성과 관련된 특정 지역에 자리잡는 것이 통례이다. 그러나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의 경우 유럽 본사는 스위스 제네바, 지주회사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N.V.의 본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둥지를 틀었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본사가 한 곳에만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기존 통념을 뒤엎은 대표적 사례다. 본사뿐만이 아니다. 기업의 제품 제작 노하우가 숨겨져 있는 디자인 부문마저 특정 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있다.

미국 IT(정보통신)의 본산인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를 비롯해 영국 브리스톨과 에딘버러, 프랑스 니스 인근의 소피아 앙티폴리스, 독일 그라습런, 캐나다 오타와, 체코 프라하, 터키 이스탄불, 이탈리아 시칠리아 팔레르모, 모로코 라바트, 심지어 최근 IT 중심지로 부상한 인도 벵갈루루 등 무려 22곳에 디자인 설계 센터를 구축했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본사와 디자인센터를 전 세계에 확산시켜 글로벌경영과 제품 제작 노하우의 글로벌 소싱(Global Sourcing)을 담당할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을 구축한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을 상용화한 퀄컴도 대표적인 메타내셔널 기업의 사례이다. 다른 기업에 앞서 한국에서 기회를 찾은 것에 대한 보상으로 퀄컴은 관련 기술에서 글로벌 리더로서 위치를 확고히 했다.

루슨트테크놀로지가 국내에 벨연구소 설립을 추진 중인 것도 기회 발굴이 주 목적이다. 회사 관계자는 “발빠른 한국의 정보기술을 습득하고 이를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시장 발굴의 기회로 활용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해외 지사가 본사보다 앞서도 좋아

메타내셔널 기업이 노리는 또 다른 경영전략은 부문별 최고를 통한 전체 최고의 달성이다. 다국적 경영에서는 본사보다 앞선 지사는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세계화가 가속화된 시점에서는 다르다. 모토로라ㆍ3Mㆍ루슨트테크놀로지 등은 핵심 연구기능을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 지역으로 분산시켰다.

▣ 현지의 핵심역량 활용 극대화

CDMA 기술 부문에서 모토로라 본사는 한국이다. 모토로라는 1967년 한국에서 반도체 생산공장을 최초로 설립하는 등 오래전부터 한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한국 모토로라코리아 디자인센터에는 CDMA 기술 휴대폰과 관련 장비의 핵심디자인을 연구하는 인력이 약 500명이나 포진해 있다. 여기서 나온 기술과 디자인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모토로라 네트워크에 공급된다. 한국이 CDMA 기술 부문에서는 모토로라의 ‘두뇌' 역할을 하는 셈이다.

▣ 해외에서 개발된 디자인ㆍ기술도 적극 수용

스카치테이프ㆍ포스트잇 등 생활용품을 만드는 3M은 서울에서 개발된 기술을 동남아뿐만 아니라 본사에서도 적극적으로 수용해 상품화하고 있다. 특히 3M은 한국 기업이 중국이나 베트남 등지로 공장을 이전하고 있는 현실에서도 30년간 꾸준히 사업을 해 오고 있으며, 전남 나주와 경기도 화성 제조시설에 이어 동탄에도 R&D센터를 세울 예정이다. 3M은 특히 1,400억 원을 투자한 화성 산업안전제품 제조시설을, 한국은 물론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의 허브공장으로 삼겠다는 전략도 내비쳤다.

 

▣ 지리적 위치에 구애받지 않는 메타내셔널 체제 구축

또한 지게차 생산업체인 클라크머티리얼 핸들링은 국적지인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와 독일 등 3개국에 본사를 두고 있다.

컨설팅 산업에서도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은 지리적 위치에 구애받지 않고 국제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ㆍ액센추어 등 컨설팅 회사는 오래전부터 메타내셔널 기업화를 지향하고 있다. 본사를 아예 두지 않거나 두더라도 형식적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세계적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 SAP도 한국에 R&D센터를 설립한다. SAP는 전사적 자원관리(ERP) 시스템 분야에서 세계 1위 기업으로,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Fortune)>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의 80% 이상이 이 회사의 ERP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SAP 관계자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마련되는 SAP 한국R&D센터는,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정보통신(IT)기술을 활용한 연구 허브(Hub)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가 지난 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 디자인센터를 설립해 ‘싼타페'라는 히트상품을 일궈 낸 것도 눈에 띈다.

현대자동차는 미국 외에 인도에서도 성공을 거뒀다. 현대자동차는 세계 소형자동차 시장을 평정하기 위해 인도에 통합 허브(Hub)를 구축한다. 이 허브에는 R&D센터, 지역 조달 활동 및 생산본부 등이 포함되는 등 메타내셔널 체제를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메타내셔널 기업의 생산거점

메타내셔널 기업 중 국내에서 성공을 거둔 대표적 기업은 어디일까.

경상남도 창원시 귀현동에 자리잡은 볼보건설기계코리아. 33만 평의 대단지에 굴착기ㆍ모터 그레이더 등 건설 중장비를 연간 1만 2,000여 대 생산하는 볼보건설기계코리아 창원공장은 한국에서 생산은 물론 제품의 기술개발도 함께 하는 글로벌 생산거점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전 세계 볼보건설기계에서 한 해 생산하는 굴착기가 1만 7,000대인데, 볼보건설기계코리아의 연간 생산량이 1만 2,000대이다. 사실상 전 세계의 볼보 굴착기 10대 가운데 7대가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셈이다.

 

메타내셔널 기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메타내셔널 기업을 향해 나아가는 기업들의 움직임을 바라만 보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말로 ‘초국적 기업'이라 풀이되는 메타내셔널 기업을 따라잡기 위해, 그야말로 초국적인 전략과 비전이 필요한 때다.


- 김민구 / 매일경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