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들의 기술혁신과 신제품 개발 경쟁이 심화되면서 기업 내부에서 R&D를 수행하는 폐쇄형 R&D에서 탈피하여 ‘개방형 R&D'를 추구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효율적인 기술획득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는 개방형 R&D인 C&D(Connect & Development)는 기업 내부와 외부의 핵심 지식을 연결하는 지식 네트워크를 통해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혁신을 지속적으로 이루어 내는 방식이다. C&D를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P&G의 사례를 소개한다.
R&D의 새로운 패러다임, 개방형 R&D
‘개방형 R&D'란 기술혁신 과정에서 기업 내·외부의 아이디어와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R&D 활동을 의미한다. 이 같은 움직임은 2000년대 이후 선진 기업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개방형 R&D의 출현은 산업과 제품의 융복합화가 심화되면서 단일 기업이 모든 영역의 기술을 보유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늘어나는 R&D 투자 규모에 비해 투자 효율이 낮은 세계 비즈니스 업계의 고민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개방형 R&D는 신제품 창출 능력 향상과 시장 출시 시간(Time-to-market) 단축을 위해 외부로부터 아이디어와 기술을 인소싱(In-sourcing)한다. ‘인소싱'은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외부에서 도입하여 사업화한다는 의미에서 기업의 특정 기능이나 업무를 ‘낮은 비용'으로 제 3자에게 위탁하는 아웃소싱과는 차이가 있다.
특히, 일반 소비재와 같이 제품 수가 많고 유행에 민감한 산업에서 많이 활용되는데 이 같은 개방형 R&D를 통해 성공적인 기술전략을 펼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 바로 P&G(프록터앤드갬블, The Procter & Gamble Company)이다.
전 세계 150만 명의 연구 인력을 활용하는 P&G
P&G의 홈페이지에서는 “지금 기술을 찾고 있습니다” 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실제로 P&G는 지난 수년 간 외부에서 수많은 기술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 전 세계에 7,500명이나 되는 연구 인력을 거느리고 연구개발비로만 18억 달러를 쏟아 붓는 거대 기업 P&G가 왜 외부 기술에 의지하려는 것일까?

C&D는 자사의 지적재산과 타인의 지적재산을 결합해서(Connect) 더욱 뛰어난 제품을 개발(Develop)하는 일종의 개방형 R&D방식이다. P&G는 2001년에 이를 도입했고, 현재는 전체 기술의 약 35%를 C&D를 통해 충당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그 비율을 50% 이상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렇게 P&G가 C&D에 집착하는 이유는 앨런 래플리(Allen. G. Lafley) 회장 취임 이후 기존의 내부 지향형 R&D만으로는 시장이 원하는 혁신적인 상품을 만들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술 수명 주기가 빠른 산업에서는 예전처럼 R&D를 은밀하게 진행할 필요가 없고, 그렇다면 전 세계 150만 명에 달하는 연구자 풀(Pool)을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전동칫솔을 개발하려다 C&D를 만나다
C&D의 탄생 비결은 재미있게도 전동칫솔이 계기가 되었다. 콜게이트 팜올리브(Colgate Palmolive, 미국의 가정용품·목용용품 제조 및 유통업체)와 오럴케어 부문에서 힘겨운 경쟁을 하고 있던 P&G는 전동칫솔 분야에 진출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전자제품 경험이 일천했던 P&G에게 그것은 모험이었다.
그때 어느 외부 발명가가 자신이 그 기술을 제공해 주겠다는 제안을 해 왔다. 그것은 바로 ‘스핀 팝(Spin Pop)'이라는 자동 사탕 빨기 기술이었다. 막대사탕을 기구에 꼽고 버튼을 누르면 사탕이 돌아가면서 자동으로 사탕이 빨리게 되는 간단한 기술이었다. 그 발명가는 그 기술을 활용한 전동칫솔 시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호의적인 반응을 보고 P&G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다.
P&G는 많은 비용이 들지도 않고, 간단하지만 획기적인 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타사에 비해 10% 정도 저렴한 전동칫솔을 출시했고 이는 오럴케어 부문의 시장 확장 기반이 되었다. 래플리 회장은 이 성공 사례를 일회성 행운으로 넘기지 않고 하나의 기술전략으로 체계화했는데 그것이 바로 C&D이다.
‘프링글스 프린트'의 비결
P&G의 스낵부문이 2004년 출시해서 큰 인기를 끌었던 ‘프링글스 프린트'도 C&D를 통해 탄생한 제품이다. P&G 연구팀은 밋밋한 감자칩 위에 그림을 그려 넣는다면 재미있는 인기상품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습기가 많은 고온의 감자칩 반죽에 이 같은 그림을 그려 넣기가 쉽지 않았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R&D팀은 결국 C&D를 활용하기로 결정하고 이에 대한 아이디어 요구서를 글로벌 기술 네트워크에 배포했는데 뜻밖에 연락이 된 것은 이탈리아의 한 빵집이었다.

그 조그마한 빵집에서는 식용잉크분무기술로 그림을 그린 빵을 만들어 왔고 P&G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이를 찾아내서 연락을 취한 것이다. 결국 거대한 식품기업 P&G가 이탈리아의 조그만 빵집의 기술을 받아들였고 이를 통해 탄생한 것이 ‘프링글스 프린트'다.
프링글스 프린트는 제품기획에서 출시까지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P&G는 C&D를 통한 프링글스 프린트 출시 이후 안정적인 글로벌 기술 네트워크를 확보하기 위해 기술중개회사인 나인시그마(Ninesigma), 유어앙코어(YourEncore), 옛투닷컴(Yet2.com)과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개방형 혁신으로 도약하자
P&G의 C&D가 개방형 R&D의 대표 사례이긴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같은 움직임은 이미 전 세계적인 추세이다. 그리고 그 형태는 원천기술 획득을 위해 대학과 협력관계를 구축하거나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등 점차 다양화되고 있다.
또한, 외부에서 기술을 획득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사가 개발했지만 사장되어 있는 기술을 타사에 라이선스(License) 형태로 제공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등 새롭고 다양한 형태의 개방형 기술혁신 전략을 펼치고 있는 기업들도 많다.
한편, 한국 기업에는 아직 개방형 R&D가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외부와의 협력보다는 자체 R&D를 중시하고 있으며, 개발된 기술 및 특허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점차 규모화, 복잡화, 학제화되어 가는 기업의 R&D는 무엇보다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다양한 기술원천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적 기술개발 흐름에 따라 대규모 투자에 따르는 위험을 줄이면서 폭넓은 글로벌 기술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안팎으로 열린 기술혁신'을 추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정태수 /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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