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경영

나부터, 지금부터, 작은 것부터 / 타성에 젖은 조직이나

南塘 2008. 11. 28. 18:25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5편] 나부터, 지금부터, 작은 것부터 / 타성에 젖은 조직이나 개인은 역전 드라마를 쓸 수 없다 
  

역사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위인들의 출발은 보잘 것 없었던 경우가 태반이다. 그들도 한때는 우리와 같은 한 점, 고독한 개체였다. 개인이 자신의 성장 로드맵을 만드는 일, 나아가 조직이 소망스러운 미래를 건설하는 일은 모두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들의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는 출발은 의외로 간단하다. ‘나부터-지금부터-작은 것부터' 바꾸면 된다. 단,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어떤 의미로든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은 중요하다. 실체가 있는 사물이든, 아니면 삼각형이나 타원,숫자같은 형태로 존재하는 추상이든 말이다. 그것들 중 하나만 없어도 세계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 될 것이다.

철학자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범주(Category)'라는 영역에 집어넣는다. 실체, 양과 질, 관계, 양상 등이 대표적인 범주들이다. 그중에서도 관계(Relation)는 가장 의미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만약 이 세상에 ‘관계'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마치 모든 군인이 부동자세로 서 있는 것 같은, 모든 사물이 아무런 연관성 없이 나열되어 있는 모양이 될 것이다. 당연히 변화라는 것도 없다.

관계가 있음으로 인해 세상은 변화의 역동성을 갖게 된다. 물체의 이동은 사물과 사물 사이의 공간적 관계의 변화다. 물이 끓거나 색깔이 변하는 식의 질적인 변화 역시 하나의 성질이 다른 성질과 맺고 있는 관계의 변화로 치환된다. 생명체의 탄생과 죽음 역시 관계에서의 변화다. 한 아이의 탄생은 부부관계를 변화시키고 부모의 죽음은 자식들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천문학자는 태양과 행성의 본성, 본질을 연구하는 데 주목적을 두지 않는다. 지구가 태양을 어떻게 도는지, 행성과 행성이 어떤 함수관계를 맺고 움직여 나가는지를 파악한다.

사회적 네트워크를 배제한 미래는 없다

관계는 단일한 것으로 존재하기보다는 매우 복잡한 관계망의 한 부분으로서 존재한다. 즉 여러 관계들이 모여 그물을 형성하는 것이다. 시스템, 구조, 네트워크 등과 같은 말은 모두 이런 맥락을 함축한다.사회적 관계는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만들어진 관계나 네트워크는 한 인간 또는 특정집단이 쉽게 바꿀 수 없다. 관계가 짜여지면서 단단한 구조물로 바뀌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로 나의 미래는 다른 사람들의 미래와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사회적 네트워크를 배제한 채 순수하게 홀로 꿈꿀 수 있는 미래는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북한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리는 미래가 같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네트워크가 전적으로 독립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어떤 네트워크도 항상적으로 유지되지 않으며, 계속 수선되고 찢어지고 기워진다. 인간의 주체성 때문이다. 주체는 항상 자신이 처해 있는 자리-위치를 바꾸려고 한다. 국가나 사회, 조직은 주어진 자리에서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는 인형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고유한 욕망과 의지, 가치를 가진 주체들의 총체이다. 나아가 어떤 주체는 힘을 합해서 네트워크 구조의 형태를 바꾸려고까지 한다. 네트워크는 단지 주어진 메커니즘이 아니다. 그래서 또 다시 등장하는 역설적인 논리는, 미래도 창조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연결되는 모습이 중요하다

사실 역사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위인들의 출발은 보잘 것 없었던 경우가 태반이다.

조선시대 장영실은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온갖 핍박을 받았지만 최고의 과학자로 청사(靑史)에 빛나는 업적을 이뤘다. 각종 천문기구와 측우기 등의 개발을 통해 국가 경영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경제 발전과 민생 안정에 절대적인 공헌을 한 것. 에디슨은 고작 3개월의 초등학교 경력과 청각장애가 있었지만 불세출의 발명왕이 되었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쓴 조앤 롤링은 20년 전만 해도 도무지 먹고살 길이 없어 막막해 하던 ‘싱글맘'이었다. 그녀는 이제 갑부가 되었지만 <해리 포터>가 소설과 영화를 통해 자라나는 전 세계 어린이들의 동심과 상상력을 자극한 점을 생각해 보면 베스트셀러 이상의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삼성과 현대를 창업했던 고(故) 이병철 회장과 정주영 회장은 또 어떠했던가.

그들도 한때는 우리와 같은 한 점에 불과했다. 고독한 개체였다. 하지만 조직이나 집단의 역량은 개체의 총량이 아니다. 네트워크의 시너지는 개체가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연결되느냐에 달려 있다. 만약 조직이 점들의 단순한 연결에 그쳤다면 작은 조직은 절대로 큰 조직을 이길 수 없다. 작은 나라는 결코 대국과 맞짱을 뜨지 못한다. 고대 당나라는 세계사적으로 가장 번성하고도 군사적으로는 ‘당나라 군대'라는 조롱을 들어야 했다. 보병 배치 전략이나 기마전술이 당대의 유럽 국가들에 비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개인이 자신의 성장 로드맵을 만드는 일, 나아가 조직이 소망스러운 미래를 건설하는 일은 모두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타성에 젖은 개인이나 조직은 결코 역전의 드라마를 쓸 수 없다.

 

어린 코끼리의 뒷다리에 족쇄를 채우고 2m 길이의 사슬에 연결하면 코끼리는 성년이 되어서도 2m 이상을 움직이지 못한다. 그만큼 타성은 무서운 것이다. 2차 대전 때 프랑스군은 세계 최강의 보병부대를 자랑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보병 편제는 기마전술이 횡행하던 시절의 편제와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세계 최초로 기계화사단을 편성한 독일군은 마지노선을 일거에 돌파했다.

물론 ‘작은 시도'도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된다. 협력과 학습이 병행돼야 한다. 주변의 협력자들과 끊임없이 소통을 하고 아이디어를 모아야 한다. 협력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팀워크를 다지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시도가 비록 실패하더라도 내일의 성공을 기약할 수 있는 탐색과 반성을 해야 한다.


연구원의 작은 혁명으로 탄생된 PDP

1979년 일본 후지쓰의 연구원 츠타에 시노다 씨는 “TV를 벽에 걸 수는 없을까”하는 고민에서 시작해 컬러 PDP(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를 개발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낸다. 하지만 연구활동에 너무 몸을 혹사시킨 나머지 병원에 입원하는 불상사가 발생했고 연구 프로젝트는 중지됐다. 2년 후에 건강을 회복해 출근했지만 그의 보직은 연구부서에서 생산지원부서로 변경됐다. 그래도 츠타에 씨는 부서장을 졸라 연구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부서장은 난감했지만 그를 도와주기로 했다. 고유 업무에서 츠타에 씨를 빼 주고 약간의 예산지원도 했다. 상하가 꽉 막힌 당시 조직문화에선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회사의 공식 프로젝트가 아니었던 만큼 츠타에 씨는 시제품조차 만들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회사 인근 술집에 수시로 사내 엔지니어들을 불러 모았다. “벽걸이 TV를 만들어 세계를 놀라게 하자”고 말했다. 브라운관 TV가 시장을 주름잡던 1980년대 중반이었다. 그런 식으로 외주업체에도 부탁을 했다. 츠타에 씨의 강한 의지에 감명을 받은 일부 직원들과 외주업체는 시제품 제작을 돕기 시작했다. 각각 해직과 거래 중단을 각오한 행동이었다.

중간에 제작 ‘비밀'이 새 나가 중역들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지만 이번엔 또 다른 이들이 도움을 주었다. 오랫동안 그의 연구를 반대했던 상사들이 예산지원을 늘려 주며 ‘바람막이' 역할을 해줬던 것. 그 결실이 1992년 세계 최초로 개발된 PDP였다. 이듬해 뉴욕 증권거래소는 이 PDP를 객장에 내다 걸었다.

츠타에 씨는 지난 2006년 “전자기술 혁신에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공로를 인증받아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로부터 명예회원 자격을 받았다. 세계 전자업계 엔지니어들에게 최고의 명예이자 올해 윤종용 삼성전자 고문이 부여받았던 바로 그 자격이다.

 

츠타에 씨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의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는 출발은 의외로 간단하다. ‘나부터-지금부터-작은 것부터 바꾸자'로 요약된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태풍을 몰고 온다는 유명한 ‘카오스 이론'도, 사실은 지금 이 순간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부서와 회사를 바꾸고, 나아가 나라의 경쟁력과 인류의 삶을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 조일훈 /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