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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우리 일상에 한 걸음 더 다가서다

南塘 2008. 10. 29. 22:57

[우리의 친구 로봇 2편] 로봇, 우리 일상에 한 걸음 더 다가서다 
  
로봇이 우리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심지어는 숙련된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으로까지 그 범위를 넓혀 가고 있다. 청소밖에 할 줄 몰랐던 로봇이 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를 돕고, 군대에서는 군인을 보호하는 역할까지 해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IT 기술과의 접목을 통해 홈네트워크를 구현할 구심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과연 로봇은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가. 혹시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로봇 가족이 옆집으로 이사 오는 건 아닐까. 우리 생활 곳곳에서 활약 중인 다양한 로봇들을 소개한다.


로봇 시대는 지금 '현지 진행 중'

2004년 개봉한 윌 스미스 주연의 미국 영화 <아이, 로봇>에는 사람과 비슷한 겉모습을 지닌 데다 고도의 지능까지 갖춘 로봇이 등장한다. 이 로봇은 말을 하고 두 발로 뛰거나 걸을 수 있으며, 스스로 생각도 한다. 거리에서 쓰레기를 치우거나 심부름을 하는 일도 역시 모두 로봇의 몫이다.

이런 로봇은 1999년 개봉한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 <바이센티니얼맨>에도 등장한다. 바이센티니얼맨은 설거지ㆍ청소ㆍ요리를 도맡아 하는 가사 로봇이다. 집사나 하인이 하던 일을 이 로봇이 대신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이 로봇들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로봇의 유형과 수준에 가장 근접해 있다. 우선 몸통에 팔 다리가 붙은 사람 신체의 기본적 얼개를 지녔으며, 2족 보행을 한다.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고 사람과 유사한 ‘감정'까지 느낀다.

하지만 이 영화들의 이야기 뼈대면서 동시에 흥행 요인이 된 로봇들은 현실에선 아직 꿈에 불과하다.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두 발로 걷거나 가볍게 뛰는 로봇을 만드는 것에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과 ‘수다'를 떠는 것도 불가능하며 유리잔을 깨뜨리지 않고 손으로 집어 옮기는 것조차 어렵다. 손아귀 힘이나 손가락 위치를 로봇 스스로는 계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개발된 사람형 로봇은 겉모습만 사람과 비슷할 뿐 제대로 된 ‘지능'을 지니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 같은 평가는 로봇을 ‘사람형'으로 한정 지었을 때의 얘기다. 비록 사람의 모습을 하지는 않았어도 특정 목적에 맞는 형태와 기능을 갖춘 로봇은 이미 우리 생활 곳곳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혼수의 필수 아이템이 된 로봇 청소기

그런 로봇이 가장 광범위하게 자리 잡은 곳은 가정이다. 바로 로봇 청소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 미국 회사 ‘아이로봇'이 전 세계에 대히트시킨 로봇 청소기는 현재 국내 기업들도 생산에 적극 나서고 있다. 편리함 때문에 독신자와 맞벌이 부부를 중심으로 수요가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 시장의 규모는 미국ㆍ캐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이다.

요즘 나온 로봇 청소기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경탄이 나올 정도다. 문턱을 알아서 넘고 낭떠러지를 피하는 것은 물론 충전도 스스로 한다. 딱히 사람이 거들 일이 없다. 주부가 진공청소기를 들고 직접 집 안 곳곳을 누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전자기기 중 가장 뛰어난 수준의 능동적 움직임을 보인다.

최근 로봇 청소기에는 청소할 지역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기술이 탑재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선보인 제품에는 주변 사물을 카메라로 인식한 뒤 집 안 지도를 그려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는 기능이 구현됐다. 한번 청소한 곳을 또 다시 청소하는 일이 방지된다. 예전 로봇 청소기들은 청소한 곳과 하지 않은 곳을 구분하지 못했다. 새 로봇 청소기의 청소 효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로봇 청소기는 또 다른 방향으로 진화 중이다. 휴대전화 서비스와 결합해 홈네트워크 단말기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달 국내 한 이동통신사는 전문업체와 손잡고 로봇 청소기에 카메라ㆍ스피커를 달아 사용자가 바깥에서 예약 청소를 시키거나 원하는 지역으로 로봇 청소기를 이동시키는 서비스를 선보이겠다고 발표했다. 이 기능이 탑재된 로봇 청소기를 쓰면 스피커와 카메라로 통화를 하거나 집 안에 있는 아이나 노인을 돌볼 수 있다.


간호사 도와 체온 확인도

로봇은 의료 현장에도 속속 도입되고 있다. 지난달 포항지능로봇연구소 등은 병원에서 간호사를 도와 환자의 몸 상태를 측정하고 약품을 운반하는 로봇을 발표했다. 이 로봇은 간호사와 함께 병실을 다니며 각종 의약품과 엑스레이 필름 등을 운반하고 환자의 의료기록 차트를 제공한다.

특히 간호사의 명령을 받아 환자의 몸에 부착된 센서에 무선으로 접속해 체온을 측정한다. 로봇이나 간호사는 굳이 병실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로봇은 환자에게 이상이 발생하면 이를 병원의 의료관리시스템에 자동으로 전송한다. 연구팀은 환자의 몸에 부착하는 체온감지 패치도 이번에 한꺼번에 개발했다.

이 로봇은 폭 60cm, 길이 80cm, 높이 88cm로 종합병원에서 쓰이는 카트 정도의 크기며, 체온 외에도 혈압ㆍ혈중 산소량ㆍ심전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도 탑재됐다. 내년부터 시범 보급에 들어갈 이 로봇이 상용화되면 간호사의 업무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환자는 더 신속하고 정확한 의료 서비스를 누릴 것으로 전망된다.

사람의 손길 없이도 자동으로 시료를 분석하는 의료 로봇도 조만간 등장한다. 주인공은 올해 7월 포스텍ㆍ포항지능로봇연구소ㆍ성균관대 등 8개 기관이 발표한 진단검사 로봇이다. 대형병원에서나 가능한 진단검사를 중소병원에서 할 수 있도록 개발된 이 장비는 현재 70개 정도인 진단검사 수를 2009년 100개로 늘린 뒤 2012년 상용화할 예정이다.

이 장비를 쓰면 환자에게서 채취한 혈액을 굳이 큰 의료기관에 보내지 않고도 그때그때 분석할 수 있어 검사 비용이 크게 줄어든다. 이 로봇에는 인쇄용 프린터 노즐이 잉크를 뿜는 원리를 이용해 공중에서 시약과 혈액 방울을 섞는 디스펜서 기술, 환자에게 가장 알맞은 검사 방법을 의사에게 알려 주는 첨단 인터페이스 시스템이 탑재됐다.

2005년 이후 암이나 심장 수술을 하는 데 많이 쓰이기 시작한 ‘다빈치'는 이미 대표적 의료 로봇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수술 부위를 열 배 이상 확대해 3차원 영상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다빈치는 암 조직을 깨끗하게 제거하거나 정교한 기구 조작이 요구되는 심장 수술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다.


병사 대신해 군장 짊어져

군사 분야에서도 로봇은 특급 대우를 받고 있다. 극한의 능력이 요구되는 전투 현장에서 병사의 생명을 지키고 체력을 비축하는 데 로봇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회사 아이로봇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나서는 미군에 군사 로봇 ‘팩봇'을 공급해 뛰어난 전과를 올렸다. 사람 무릎 정도에 이르는 자그마한 덩치인 이 로봇은 무한궤도를 써서 이동하며, 폭발물 탐지 등 정찰 임무를 수행하는 데 투입됐다. 미군은 팩봇 때문에 많은 병사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예전 같으면 인명 손실을 무릅써야 할 임무를 이 로봇이 대신하면서 전쟁 수행의 양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실전 투입이 머지않은 또 다른 군사 로봇도 있다. 군장 운반용 로봇이다. 미국 군수회사 보스턴 다이내믹스 사가 개발 중인 ‘빅 독(Big Dog)'이 대표적이다. 송아지 같은 크기와 겉모습을 지닌 이 로봇은 네 발로 걸으며 산악 등 험준한 지형을 사람이 가볍게 뛰는 속도로 움직인다. 미군은 이 로봇을 무거운 군장이나 부상당한 병사를 운반하는 데 쓸 계획이다.

군장 운반용 로봇은 국내에서도 개발 중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5년 안에 미군에서 개발 중인 로봇보다 더 나은 제품을 내놓을 계획을 세웠다. 미군 로봇보다 유연한 관절을 달아 고르지 않은 땅에서 더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게 하겠다는 복안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이 로봇이 60kg의 짐을 지고 시속 5.4km로 이동하도록 한다는 목표를 정했다. 이 정도면 일반적인 행군 속도와 비슷하다. 병사들은 무거운 장비에서 해방돼 체력을 비축하는 한편 위험에 더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군도 미군에 못지않은 로봇 군대를 편성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이 밖에도 포스텍 연구진은 한 번 본 사람의 얼굴을 잊지 않는 로봇 안내원을 개발했다. 내년 3월 경북 포항시청에서 민원인을 맞을 이 로봇은 얼굴 굴곡이 만드는 명암을 구분해 상대를 기억하는 능력을 지녔다.

내년에는 또 송도 신도시에서 패트롤 로봇과 서빙 로봇도 만날 수 있다. 유비쿼터스 기술이 구현된 시범 지구인 ‘투모로우 시티(T-City)'에서 로봇이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정부측 계획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도 어린이에게 동화책을 들려주고 공포 등 다섯 가지 표정을 지을 수 있는 로봇을 내놓았다. 이 로봇은 일종의 로봇 가족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 이정호 / <동아사이언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