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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만 안 해도 인간관계는 술술 풀린다

南塘 2008. 10. 17. 17:44

[세상 속으로 나온 ‘심리학’ 4편] 착각만 안 해도 인간관계는 술술 풀린다 / 소통의 심리학 
 

“혹시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이 물음에 자신 있게 “No”라고 대답할 수 없다면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행복은 관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관계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은 불행하다. 겉으로는 웃고 있을지 몰라도 속은 썩어 가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왜 소통이 어려운 것일까? 인간관계를 잘 풀어 가려면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 나 자신도 몰랐던 숨겨진 나를 발견하는 방법과 함께 우리가 알아야 할 소통의 심리학을 알아보자.


인간관계란 기본적으로 상호 이해와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빠진 관계는 가식적이다. 따라서 그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관계일 뿐 나의 행복을 위한 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상호이해와 신뢰란 나로부터 출발한다. 나를 모르고서는 상대를 이해하고 신뢰하고 말고가 없는 법이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들 누구나 자기 자신조차 잘 모르면서도 남을 알려고 하고, 또 알고 있다고 자처하는 데 있다. 자기를 모르면서 남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가 남을 평가하는 것은 반드시 자신이라는 필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나를 제대로 모르고서 남을 제대로 평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필터 자체에 문제가 있는데 제대로 인지될 리가 없는 법이다. 더구나 우리의 자기 시스템이라는 것은 자신의 구미에 맞는 정보만을 채택하고 불리한 정보는 철저히 무시하는 성향이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다.

 


나는 완벽한 독재자


정보를 통제하지 않는 독재 정권이란 상상하기 어렵다. 모든 독재 정권은 정권에 이로운 일이라면 침소봉대한다. 불리한 일은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도록 싹을 잘라 버린다. 사실의 은폐와 왜곡도 서슴지 않는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실을 날조하는 것조차 주저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의 장기 집권을 위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다. 바로 우리 자신이야말로 독재자라는 것이다.

그린발트(A. G. Greenwald)라는 사회심리학자는 ‘자기'라는 시스템을 고찰하면서 이것을 다양한 언론 통제를 실행하는 전체주의적 정치 시스템에 비유했다. 우리들의 자기라는 시스템에서는 독재 정권에서 행해지는 정보의 왜곡과 견강부회가 서슴없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독재 정권이 언론 통제로 장기 집권을 노리듯이 자기라는 시스템은 자기에 관한 정보를 왜곡하고 날조해 가면서 자기 시스템을 영구히 유지하려 든다. 불리한 정보는 무시하고 유리한 정보만을 취사선택한다. 그럼으로써 자기 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하려 드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항상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원흉임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자기라는 독재 시스템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법으로 장기적인 안정성이 유지된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우선, ‘자기중심성'이 있다. 이것은 거의 모든 판단이나 기억이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경향을 말한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를 기준으로 하여 모든 판단을 내린다. 독재주의 정권에서 모든 판단의 기준이 독재자인 것과 너무나 흡사하다.

그뿐 아니라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아예 기억하지도 않는다. 설사 기억했다 치더라도 금세 잊어버린다. 부부싸움이 길어지는 것이 바로 이 기억의 자기중심성 때문이다. 양쪽 모두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기억하고 불리한 것은 다 잊어 버린다. 서로 할 말은 많은데, 아귀는 맞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한번 시작된 부부 싸움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자기에게 불리한 일은 누가 공짜로 보라고 해도 안 본다. 하지만 자기에게 좋은 일이라면 보지 말라 해도 볼 뿐 아니라 돈을 들여서라도 본다. 가령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이긴 날에는 스포츠신문을 사서 다시 읽어 가면서 경기를 재음미하지만, 패배한 날 밤에는 그토록 즐기던 스포츠 뉴스조차 보지 않는다.

스포츠 경기를 볼 때도 상대방의 반칙에 대해서는 가혹할 정도로 나쁜 평가를 내린다. 두고두고 기억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편의 반칙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 하며 지극히 관대하다. 또 쉽게 잊어버린다. 이처럼 모든 것을 자기를 기준으로 하여, 그것도 자기에게 매우 유리하게 해석하려 드는 것이 바로 자기중심성이다.


변화가 어려운 이유

두 번째로는, ‘인지의 보수성'이 있다. 인지란 지각·학습·기억·사고 등 인간의 지적 작용 일반을 지칭하는 말로, 심리학에서는 상당히 자주 쓰이는 말이다. 한마디로, 감각기관을 통해 외계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하는 모든 과정을 말한다.

인지의 보수성이란 이러한 인지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변화하는 것을 대단히 꺼리는 경향을 말한다. 인간관계에서 첫인상이 중요한 이유는 사람들이 일단 받아들인 첫인상을 좀처럼 바꾸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인지의 보수성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사람들은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는 데 대단히 인색하다. 인색할 뿐 아니라 변해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저항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IMF 외환 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 두드러진 현상이지만 ‘바뀌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사실에는 누구나 공감한다. 그러다 보니 요즈음은 변화나 변혁이라는 말을 한마디도 듣지 않고서는 하루하루를 지내기 어려울 정도이다.

우리는 변화에 대해서 상당히 이중적이다. 어려운 처지에 빠진 다른 사람이나 조직을 보면 “이대로는 안 된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식의 말을 거리낌 없이 한다. 하지만, 입장이 바뀌면 싹 달라진다. 자신이나 자기의 조직이 변화할 것을 요구받으면 전혀 다른 반응을 보여 주는 것이 우리들이다.

원래 인간이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는 소극적이다. 그 뿐 아니라, 변화해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저항마저 서슴지 않는 존재이기도 하다. 제 3자적인 관점에서는 변화의 중요성을 아주 쉽게 강조하지만 자신이 변화해야 할 당사자가 되면 가능한 한 변화를 피하려 든다. 말도 되지 않는 온갖 이유를 들어 현상을 고수하려 드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것 역시 인지의 보수성 때문이다.

 


잘 되면 내 탓, 안 되면 조상 탓

마지막으로, ‘베네펙탄스(Beneffectance)'라는 것이 있다. 단어가 어렵지만, 베네펙타스란 ‘Beneficence(영광)'와 ‘Effectance(효능)'를 합성한 단어이다. 이것은, 바람직한 결과에 대해서는 자기와의 관련을 강조하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에 대해서는 자기와 관련이 없다고 보려는 경향을 말한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잘 되면 다 자기가 잘난 덕이고 안 되면 조상이 못난 탓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승진하면 자신의 능력이 대단했기 때문이고, 경쟁자가 승진하면 줄을 잘 섰거나 아부를 잘한 덕이라고 생각한다.

대개의 상사들은 부하 직원이 어떤 일에 성공했을 때 자기가 적절한 조언을 해준 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성공의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는다. 하지만 부하 직원이 실패했을 때는 부하 직원의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실패의 원인을 부하 직원에게서 찾는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 바로 베네펙탄스 때문이다.

사람의 자기라는 시스템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독재 체제를 이루고 있다 보니 우리는 누구나 착각 덩어리이다. 스스로에는 너무나 관대하며, 남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다. 더욱이 가뜩이나 엄격한 눈으로 바라보는 남이지만, 그것도 있는 그대로의 남을 보는 것이 아니다. 착각 덩어리인 자기라는 필터를 통해 해석한 남을 본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 자체가 왜곡되기 마련이다. 결국 이것이 인간관계에서 상당한 문제점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면 우선 독재적인 자기를 허물어뜨려 민주적인 자기로 변화시켜야 한다. 인간관계에서 자기를 민주적인 자기로 변화시키는 법은 간단하다. 있는 그대로의 남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일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착각 덩어리인 자기를 끼워 넣어 자기 편한 식으로 상대방의 마음이나 행동을 해석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이것 하나만 제대로 실천해도 인간관계는 술술 풀린다.


- 이철우 / 사회심리학 박사, <인간관계가 행복해지는 나를 위한 심리학> 저자